고 신봉승 작가는 왜 정사 사료에 매달렸을까?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 19일 폐암으로 별세한 방송작가이자 역사소설가인 신봉승씨는 우리나라 정통 사극의 틀을 세운 사람이다. 향년 83세.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방대한 사료를 토대로 한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을 83년부터 무려 7년 9개월동안 쓴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TBC ‘이성계’ ‘별당마님’과 KBS ‘풍운’을 거쳐 MBC에서 ‘조선왕조 5백년’을 집필했다. 이밖에도 ‘사모곡’ ‘연화’ ‘인목대비’ ‘허씨부인전’ 등 많은 사극을 집필해 야사 중심이던 TV사극에서 정사 위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사극을 역사드라마의 본류로 만들었던 그는 실증과 고증을 바탕으로 왕조사를 풀어나갔으며, 파란만장한 역사속에서 인물들을 뚜렷하게 부각시키는데 능했다. 신 작가는 생전에 자신이 왜 정사 사료에 매달리며 정통사극을 썼는지를 밝히기도 했다.

신 작가는 월간 ‘방송작가’ 2014년 6월호에 “당시 MBC 표재순 PD가 연세대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는 얘기를 듣고, 호된 임자를 만났다고 생각해, 학문적인 의미의 국사학에 매달려서라도 담당 PD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당찬 각오를 새기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정사 사료에 매달리는 계기가 됐다”고 전하면서 “정사 사료에 몰두하기 위해 ‘조선왕조신록’ 읽기에 도전했지만 당시는 국역이 되기 전이라 한자로 된 원전을 해석하는 게 큰 고통이었다. 한학에 정통한 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내용을 숙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작품에 반영되면서 내 역사드라마가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신 작가는 마지막 대목에서 “드라마를 쓰는 일보다 사료를 살피는 일이 더 고달팠다는 사실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등불이 되기도 했다”고 썼다.

이렇게 해서 신봉승 작가는 임진왜란, 정유재란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 4백년간 애환을 담은 ‘타국’으로 한국에서 심수관을 유명해지게 만들었고, 정유재란때 일본에 끌려간 유학자 강항이 남긴 ‘간양록’을 썼다. 그는 TV드라마가 여성들의 시청률로 승패를 가늠하던 시절, 당당히 남성시청자를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이는데 일조했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그는 강릉사범,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대문학’에서 시·문학평론을 추천받아 등단한 후 ‘조선왕조 오백년’ 외에도 ‘양식과 오만’ ‘직언’ ‘연산군시집’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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