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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집 현관문 앞에 놓인 조간신문을 펼쳐들고 헤드라인을 훑어본다. 그런 뒤 경제면을 꼼꼼하게 정독한다. 인터넷을 접속, 구독하지 않는 신문의 경제면을 살핀다. 신문기사를 읽다보면 가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어 간단한 키워드를 입력해둔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근길에 오르는 시각은 오전 7시30분쯤이다. 그보다 더 이른 시간에 조찬 약속이 있기도 하지만 거의 매일 호텔에서 조찬모임이 있다는 한국의 은행장들에 비하면 거의 없는 편이나 마찬가지다. 오전 8시쯤 헤드쿼터의 행장실로 들어선다. 책상에 앉자마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전날(월요일의 경우 전주) 업무보고서를 검토한다. 업무보고서에 의문점이 생기면 이를 메모하고 각 부서의 담당자를 호출해 약속을 잡는다. 오전 9시부터 30분~ 1시간 정도는 자기계발에 투입한다. 금융, 환율, 대출 등을 공부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계발할 시간에 고객 한명이라도 더 만나라고 하지만 너무나 빨리 변하는 금융 트렌드를 따라잡고 자신의 약점을 채우려면 혼자만의 시간은 필수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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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별 담당자와 미팅을 마치면 점심시간부터 주로 고객과 만난다. 오래된 단골고객부터 대출신청자, 그리고 불만고객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일년에 수차례는 금융감독국을 포함한 정부 기관 관계자와 만나기도 한다. 점심식사는 주로 외부 인사들과 함께 한다. 때로는 외부의 시선과 그들의 의견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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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점심식사 후에는 필요서류를 결제한 다음 각 지점을 방문하거나 직원과 회의시간을 갖는다. 저녁 시간은 가능한한 가족과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가끔 커뮤니티 모임이나 외부 행사 그리고 저녁 미팅에 참여하다보면 밤 9~10시께 귀가하게 마련이다. 중견 한인은행을 이끌고 있는 A행장의 하루 일과다.
은행마다 규모가 다르고, 같은 은행이라도 매일, 매월 사정이 다르다보니 ‘은행장의 하루는 이렇다’라고 정형화하기는 어렵다. 대체적으로 한인 은행장의 하루는 위와 같은 패턴으로 흘러간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회의-결제-모임 등 출퇴근 승용차 안에서 보내는 왕복 1시간여를 빼면 식사하는 시간조차 업무와 연관될 수 밖에 없다.
남가주 한인커뮤니티에서 그나마 기업의 틀을 갖춘 곳이라는 한인은행. 적게는 3억달러에서 많게는 100억달러를 넘보는 자산규모를 가진 한인은행의 최고경영자(CEO)의 하루를 엿보는 한편 ‘한인은행장’이라는 직함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을 되짚어본다.
●은행장이라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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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운영과 경영을 책임지는 은행장은 은행의 정책(Policy)과 상품(Product)을 결정하고 미래를 위한 청사진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사진, 주주 그리고 경영진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가장 중요하다. 금융감독국과 연방준비제도(Fed) 등 정부기관과 관계 조율도 은행장의 주요 업무다. 인사권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외부의 시각과 달리 은행장이 독단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물론 취임과 동시에 자신이 선호하는 인재를 특정 포지션으로 영입하기도 하지만 실행에 앞서 이사들과 의견 조율은 필수적이다. 각 부서간 미팅을 주재하고 컨퍼런스 등에 참가해 은행을 투자자에게 알리며 각종 대출을 유치하는 업무는 기본사항이다. 외부행사에 은행의 얼굴로 나서는 일도 마다해서는 곤란하다. 주말에도 각종 미팅이나 커뮤니티행사에 참여해야하는 까닭이다.
흔히 은행장은 엄숙한 분위기가 가득한 행장실에 앉아 깨알같은 글자로 빼곡한 서류를 검토하고, 직원들과 말 한마디 나누기 힘든 무게감을 지녔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유니티티 은행 최운화 행장은 사실상 직급을 파괴했다. 직원들과 자유롭게 메신저 문자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고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행장과 직원이 곧바로 필요한 문제를 의논한다. 실제 최 행장과 같이 있다보면 행원들이 보내는 문자나 카톡이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행장과 행원이 같이 밥을 먹으며 일에 대해 논의하고 업무도 간단한 일이라면 카톡이나 문자를 통해 보고하는 은행이 늘고 있다. 서류도 일부에서 생각하는 숫자와 통계로 가득찬 것이 아니라 일반 회사처럼 보기 쉽고 읽기 편하게 정리돼 있어 은행업무에 대한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메일이나 팩스도 흔하게 사용된다. 직원이 직접 행장실을 노크해 두꺼운 폴더 등을 건네는 일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파워포인트 등을 통한 프레젠테이션 보고는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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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의 스펙
은행장이 되기 위해 경영, 경제 혹은 금융을 전공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충분조건은 되겠지만 말이다. 한인커뮤니티 은행 가운데 자산규모가 가장 큰 BBCN뱅크의 케빈 김 행장은 한국외국어대에서 금융과 무관한 인문학(영문학)을 전공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UCLA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따고 로욜라법대를 마치며 공인회계사(CPA)와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했다가 이사진의 전문성 강화라는 추세에 따라 은행계에 발 디딘 케이스다. 한미은행 금종국 행장 역시 대학에서는 생물학을 전공했다. 1977년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뱅크에서 기업금융 행원으로 입행, 은행가로 경력을 쌓기에 이르렀다. 윌셔은행 유재환 행장은 서울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Cbb뱅크 조앤 김 행장은 고려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오픈뱅크 민 김행장은 USC에서 재정학을 전공, 그나마 뱅킹과 밀접했다.유니티뱅크 최운화 행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한국외환은행에 입사, 무역금융을 경험하면서 뱅커 경력을 쌓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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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임기
은행장은 몇년 임기가 보장된다는 규정은 없지만 대체적으로 기본 3년에 옵션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기본 임기가 끝나면 실적에 따라 2~3년 가량이 계약이 연장된다. 케빈 김 BBCN 행장의 경우 지난 2014년 취임, 윌셔은행과 통합 이후에도 행장 자리를 유지하게 돼 2017년까지는 CEO자리가 보장돼 있다. 윌셔은행 유재환 행장은 지난 2011년 취임 후 2013년말 3년간 연장해 2017년까지 행장직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윌셔가 BBCN과 통합하면서 합병후에 상근고문으로 한발 물러난다. 한미 금종국 행장의 경우 2013년 취임 당시 4년 임기를 보장받았지만 유 행장처럼 임기 연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평양 은행 조혜영 행장은 2011년 취임, 2014년에 내년말(2017년)까지 임기를 연장했다. Cbb뱅크는 지난 2011년 4월 영입한 조앤 김 행장의 임기를 2014년 4월 종료시키더니 새롭게 5년 계약을 안겨줬다. 오픈뱅크 민 김 행장은 2010년 4월 5년 계약으로 취임, 임기가 만료 10여개월을 앞둔 2014년 5월 2022년까지 7년간 임기가 연장됐다. 한인은행장 계약 사상 가장 긴 임기를 보장받고 있다. 유니티 뱅크 최운화 행장은 2014년 7월 취임하면서 5년 임기로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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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은행장의 연봉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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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N,윌셔,한미 등 한인은행 빅 3은행의 행장들 연간 소득은 연봉과 성과급 수당 등을 포함, 100만달러를 넘어섰다. 2014년을 기준으로 BBCN의 케빈 김 행장은 연간 191만1928달러를 수령했다. 윌셔은행 유재환 행장은 2014년에 101만달러, 한미은행 금종국 행장은 2013년 한인은행장 가운데 맨먼저 100만달러를 넘어 174만달러, 2014년에는 117만달러를 각각 벌었다. 이밖에 Cbb은행 조앤 김 행장은 2014년 147만, 2015년에 57만달러의 소득을 기록했다. 편차가 큰 것은 각종 성과급에 따른 결과다. 다른 은행장들 대부분 30만~60만달러 수준의 기본 연봉을 받고 있다.
은행장이 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비용은 대부분 행장이 우선 지출하고 이후 이를 돌려받는(Reimburse)형식으로 처리된다. 물론 사전에 계획 된 출장경비(비행기티켓, 호텔 그리고 식비)등은 은행 공식 경비로 처리된다. 휴가는 대부분 2주간의 휴가가 기본으로 주어지며 여기에 1~2주간의 휴가가 더해질 수 있다. 연간 6일로 규정된 ‘유급병가’도 사용할 수 있다.
최한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