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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동안(童顔)’을 자랑하는 가수 김원준이 지난 4월 30일 SBS-TV ‘판타스틱 듀오 시즌 2′에 출연,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했다.
지난 1992년 자작곡 ‘모두 잠든 후에’로 데뷔, ‘언제나’, ‘세상은 나에게’, ‘너 없는 동안’, ‘쇼(SHOW)’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으며 현재 밴드 ‘베일’을 결성해 활동 중인 ‘원조 꽃미남’이 김원준이다.
싱어 송 라이터로 사랑받고 있는 그는 2016년에 14살 연하의 여검사와 결혼, 올해 출생한 돌도 안 된 딸 사진을 3,000장이나 갖고 있다며 자타 공인 ‘딸 바보’란 별명을 얻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또 의사 아버지를 둔 엄친아로도 알려졌는데 2009년부터는 동부산대 음악과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강동 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 및 학과장으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상명대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는데 그가 데뷔하여 여타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릴 당시에는 말도 잘 못하고 스마트한 부분이 부족한 듯 보여 사실 교수가 된 것은 의외다. 하지만 대표곡 제목인 ‘쇼’ 처럼 날마다 새로운 인생의 ‘쇼’를 보여주고 있는 그에게는 의외일 것이 전혀 없는 것 같다.
1973년생인 그가 데뷔 후 꽃미남으로 등극하면서 한창 활발한 활동을 하던 1995년 필자는 그를 처음 만났다. S그룹의 행사에 출연하러 온 그는 연예인 병(?)에 걸려서 까칠하기 그지 없는 그야말로 비호감 캐릭터였는데 서울예대 선배라는 필자의 말에 인사를 깍듯이 하면서 다소 누그러져 행사를 잘 마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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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 2002년 LA 한국의 날 축제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그 즈음 인기가 다소 수그러진 상황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까칠했다. 가수 활동 외에도 드라마 ‘창공’, ‘이브의 화원’, ‘폭풍의 언덕’, ‘넝쿨째 굴러온 당신’, ‘딱 너 같은 딸’ 등과 뮤지컬 ‘라디오스타’, ‘살인마 잭’, ‘락 오브 에이지’, ‘힐링 하트’ 시즌3 ‘꼬리많은 남자’ 등에 출연하면 서, 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2012년 KBS-TV 주말극 ‘넝쿨째 굴러 온 당신’에 출연하고 드라마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 매스컴에서는 한물 간 스타 운운하며 김원준의 ‘쇼’가 끝이 없다는 기사들을 줄줄이 쏟아내었고 그 기사들과 어우러져 그가 1집 앨범의 ‘모두 잠든 후에’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스타로 급부상했던 것과 5집 ‘쇼’까지 쭉 정상의 자리에 있었지만 6집 이후 앨범이 팔리지 않았으나 ‘빚더미’ 위에서 9집까지 앨범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불어난 빚을 갚느라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하물며 2백원이 없어서 자판기 커피조차 못 마셨다’는 기사 등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왔고 아울러 그의 노래 중에서 ‘쇼’만이 김동률이 작사 작곡한 노래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노래가 본인이 직접 작곡한 연예계 대표적인 싱어 송 라이터라는 사실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잘 생긴 외모가 그를 스타로 부상시킨 중요한 요소였지만 어쩌면 ‘외모만으로 가수 한다’ 는 이미지 때문에 실력이 묻히기도 했던 것은 아닌지…. 자작곡이 300곡이 넘는다는 그의 집안은 ‘음악 가족’이었는데 대학 시절 클래식 모임에서 활동하던 아버지의 첼로 연주는 수준급이었으며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과 협연했던 낡은 사진도 남아 있다.
누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팝송을 즐겨 들었고 형의 영향으로 기 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요즘 TV에 자주 출연하는 그를 보며 지난 날 찬란했던 ‘쇼’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선배의 마음으로 빌어 본다. 김원준씨~! 딸 데리고 미국에 한 번 오면 좋겠네요…. 우리 LA공연을 한 번 기획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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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카 박(Elika Park·한국명 희성)씨는
1982년 ‘영 11′이라는 MBC-TV 쇼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데뷔. 방송작가 생활을 하며 여러 매체에 ‘자유기고가’로 연예 관련 칼럼과 뒷얘기를 썼다.1990년대 후반 LA에 정착한 후에도 이벤트회사를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집필활동 중이다. 서울예대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