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어떻게 강남 사모 우아진의 내면으로 들어갔을까?

“이제 퍼질 나이. 그래서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한다”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요즘 최고의 나날을 보내는 김희선(40)과의 인터뷰는 재미있다. 하고싶은 말을 속시원하게 다하기 때문이다. 자기 하고싶은 말을 다 하는 연예인은 거의 멸종한 상태다. 특히 인터넷과 SNS 시대에서 뒷일을 감당하기 힘들다.

하지만 김희선은 그렇게 해도 된다. 23년간의 연예계 생활동안 한결같이 그랬기 때문이다. 김희선과 이효리를 보면서 특급스타만이 칠 수 있는 멘트가 있다는 기사를 쓸 생각을 했다. 김희선은 ‘섬총사’에서 “국내에는 나랑 비교할 친구가 있겠니?”라고 했고, 이효리는 ‘한끼줍쇼’에서 “내가 설명이 필요한 사람인가”라고 당당히 너스레를 떤다.


최근 JTBC ‘품위있는 그녀’에서 인생 캐릭터 우아진을 멋지게 소화해낸 김희선은 최근 예능에 출연해 “성형도 안하고 운동도 안한다” 등 어쩌면 ‘망언’이 될법한 말들을 자주 한다. 그러고도 대중의 비난이 없다.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미지가 바닥이라 무슨 짓을 해도 더 떨어질 데가 없었다. 항상 반듯한 송혜교에게도 이미지를 낮추어 시작해라고 했다. 나는 약간 사고를 쳐도 그럴 수 있다며 너그럽게 봐준다. 사실 23년간 이렇게 말해왔는데, 이걸 바꾸려고 하면 더 이상하게 되지 않겠나.”

맞는 말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90년대말에 방송에서 술 마신다고 말하는 여배우는 거의 없었다. 말하면 광고가 다 끊겼다. 나처럼 1년내내 술 마시면 된다. 술을 마실 때 토하고 마시고를 계속 반복해 ‘토마토’라 했다. 사실 그런 말을 하다 욕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어떻게 술을 해요’라는 게 가식인데. 그동안 먹은 욕들이 쌓여 이제는 원기옥이 됐다”

김희선은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에게 욕 먹으면 연예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철 없던 시절, 돈이 왜 필요한지도 잘 몰랐고, 내가 마실 술만 있으면 행복했다. 잃을 게 없었다. 늘 한결 같았다. 그때 돈의 중요성을 알고 좋은 이미지지를 쌓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김희선이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희선은 나이가 40을 넘어서면 살이 찌지 않냐고 묻자 “이제 퍼질 나이다. 그래서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한다. 돈 뒀다가 어디다 쓰겠냐”고 말했다.

김희선은 ‘미스터큐’(1998), ‘토마토’(1999) 등에서 예쁜 청순가련형 캔디를 주로 연기했다. 결혼 후 복귀하면서 그런 역할을 할 수는 없었다. 전문직 의사를 연기한 ‘신의’(2012)와 ‘참 좋은 시절’(2014) ‘앵그리맘’(2015) 등 30대의 나이에는 처녀때와는 다른 독특한 캐릭터를 맡았지만 대박을 치지는 못했다.

40대에 접어들어 출연한 ‘품위있는 그녀’에서는 김희선이 가진 총물량의 총공세를 가능하게 했다. 강남 사모의 비주얼만 완성시킨 게 아니라, 우아진의 내면으로 들어가 욕망과 행복을 생각하게 하는 입체적 연기를 선보였다. 배우로서의 생활만이 아니라, 실제 강남 사모,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의 삶이 연기의 큰 바탕이 됐다. 


“대본을 잃으면서 와닿았다. 있음직한 이야기였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나와 70% 정도는 비슷했다. 강남 사모 모임도 있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놓고 브런치 모임을 가지는 것도 비슷했다. 나도 딸아이의 초등 1학년 엄마 모임, 6학년 모임이 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려고 학원 모임으로 단톡방을 만들고 브런치를 함께 한다.”

김희선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마음에 드는 건 하나도 없다. 우아진이 흥이 나는 신에서 너무 김희선이 나왔다. 남편이 ‘저 때는 너였네’라고 했다.극중 제 브랜드를 사고싶어 회사로 계약하러 오는 신이 있다. 제가 봐도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콘트롤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희선은 ‘품위있는 그녀’가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캐릭터를 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될 것 같단다.

“‘앵글리맘’에서 유정 엄마 역을 해서 상실감이 덜했다. 오히려 초등학교 2학년 딸(연아)이 있어 또래 딸을 둔 엄마 연기가 좋았다. 지금은 영락없는 애 엄마 이미지가 됐다. 사실 애 엄마 역할을 하면 ‘한물 갔네’와 같은 반을을 두려워했다. 쿨 하려고 노력하고, 초등학생 엄마인데 그럴 필요가 있나 하고 속으로 되내이면서도 정작 엄마역이 들어오면 망설였다.”

이제는 엄마 역이 어색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엄마 수다가 이어진다. “연아(딸)가 놀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없다. 학원을 안다닐 수 없다. 그래야 사회성이 성립된다.” “나를 연아 친구들이 더 잘 안다. TV에서 술 이야기를 많이 하면 ‘너네 엄마 어제 술먹었어’라고 한단다.”

엄마로서의 10년 경험이 연기에서도 반영이 돼 자연스러움이 나오는 것 같다. 김희선은 이번 드라마에서 김선아와 ‘윈윈’ 관계를 이뤘다. 상류층에서 튀쳐나와 홀로서기를 감행하는 우아진과 하류에서 상류로 들어갔으나 별 것 없음을 깨닸는 순간 파국을 맞는 박복자는 둘 다 시청자에게 강한 울림과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김희선이 처음에는 밋밋한 우아진보다 개성이 강한 박복자 역(김선아)에 더 관심을 보였지만 백미경 작가가 믿음을 주면서 우아진을 최고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선아 언니는 감수성이 예민하다. 순간순간 깊게 빠진다. 나랑 정반대다. 선아 언니는 힘든 역할이 있으면 하루종일 몰입하지만, 나는 미리 소모하면 안된다. 아무 생각 안하고 떡볶이를 먹고 놀다가 들어갈 때 몰입한다.”
 
김희선은 한층 여유로워져 있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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