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신선했던 토크 밋밋해져
비판수위 낮아지고 단순한 수다만
또 다른 연예정보프로그램으로 전락
‘헛발질’ 잦은 김구라 치열한 준비 필요
초심 돌아가 촌철살인 토크 날려야
JTBC ‘썰전’이 최근 방송 1주년을 맞았다. 1주년 특집에서는 셀프 디스도 화끈하게 하며 비평 프로그램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했다. 하지만 ‘썰전’이 초기보다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다. ‘썰전’이 나오자마자 주목받은 것은 형식을 별로 갖추지 않고서도 자유롭게 뜨거운 이슈를 분석하고 비평해 ‘토크쇼의 새로운 놈’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정치시사 토크는 공식적인 틀과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들을 만한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썰전’의 정치시사 토크인 ‘하드코어 뉴스깨기’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시사 뉴스라기보다는 술자리에서 하는 정치 이면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토크 스타일의 ‘각’은 살아 있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철희와 강용석이 자신의 입장에서 시사를 해석하고 그런 해석의 근거를 제시했다. 두 사람이 의견이 달라 한 문제를 물고 늘어지면 김구라가 중재하는 그런 구도의 묘미가 있었다. 이런 토크가 시청자가 뉴스를 바라보는 눈이 생기게 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는 점에서 ‘썰전’의 정치시사 토크는 재미와 의미를 아울러 갖춘 코너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토크의 각이 무뎌지며 밋밋해져가고 있고 몸을 사리는 모습도 보인다. 시청자에게 이철희ㆍ강용석ㆍ김구라 삼각구도의 틀이 어느 정도 읽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같은 ‘파이팅’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초기에는 1부인 ‘하드코어 뉴스깨기’가 2부인 대중문화 비평코너 ‘예능심판자’보다 시청률이 거의 배가 높았지만 지금은 두 코너의 시청률이 비슷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예능심판자’가 잘해서라기보다는 하향평준화한 것이다.
‘예능심판자’도 초기에는 신선한 맛은 있었다.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답게 타사 프로그램을 까는 것은 물론이고, 자사 프로그램을 ‘디스’하는 건 새로운 시도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초기보다 많이 약화됐고 토크의 밀도도 떨어져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평 프로그램이라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관점과 해석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그 관점을 설득력 있게 풀어가면서 패널과 주고받는 부딪힘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에 나온 관점과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하며 수다로 흘러가는 형국이다.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지 않으니 기존의 뉴스를 말하고 정리하는 박지윤의 방송분량이 크게 늘게 됐었다.
박지윤이 하차하기 직전에는 이런 스타일의 토크가 지상파 3사의 기존 연예정보 프로그램과 별로 차이가 없었던 지점까지 가기도 했다.
지난 1년간 최고의 1분 시청률에서 5위가 박지윤의 임신 발표이고, 1위가 최자&설리, 오종혁&소연 열애설 공개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비디어 비평 프로그램으로서의 영양가가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1년 특집방송에서 TV 비평가 이승한의 지적처럼 방송계에 대한 애정과 동업자주의가 헷갈리는 모습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대중문화를 비평할 수 있는 능력자 한 사람을 앉혀놓고, 박지윤 같은 아줌마와 아이돌 가수인 김희철 같은 젊은층을 대변하는 패널이 자신의 입장에서 능력자와 싸울 수 있는 구도가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2부 코너의 핵심인 김구라의 급속한 약화도 지적되어야 할 사항이다. 김구라는 이미 지난해 평론가 사이에서 ‘너무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주 지적됐다. 프로그램을 보지 않고 자신의 감만을 믿고 말을 하다보니 정보가 부족하고 헛발질이 잦아진다. 그는 경제지까지 읽어 중요한 데이터를 머리에 넣어오던 초심을 유지할 수 어려울 정도로 요즘들어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독설이 부드러워진다고 해서 될 게 아니다.
김구라가 독설이 아닌 촌철살인의 토크를 회복하려면 더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썰전’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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