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취재’ 누룩처럼… 기획의 승리 ‘…감빵생활’

tvN 수목극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우선 기획에서 성공했다. 요즘 먹히는 대중문화 코드를 잘 가지고 왔다. 지금 드라마에서 시청자의 공감대를 높이는 캐릭터는 뭔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크게 성공하고 잘나가는 사람들보다 올라가려다 넘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청자의 공감대를 더 높여준다. 주인공이 힘들어해야 한다. 단순히 ‘루저’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루저의 디테일, 루저의 차별화, 루저의 다양화 측면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금은 감옥도 드라마의 훌륭한 공간이자 소재가 될 수 있다. 교도소 이야기는 어둡고 칙칙해서, 또 자칫 범죄를 미화할 수 있다고 해서 내부적으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신원호 PD는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성공시키고 있다.


신원호 PD가 이번에 응답 시리즈 4탄을 내놨다면 욕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전 작품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깜드’(감방 드라마)로 차별화와 대중화 모두 성공시켰다.

기획이 성공한다고 해서 드라마가 히트하는 건 아니다. 캐릭터와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대중의 이성과 감성을 건드려야 한다. 자칫 범죄 미화 소리가 나올 수도 있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극단적 범죄자는 피하고, 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직장 상사의 잘못을 떠안아 배임으로 수인이 된 건설회사 재무팀 과장 고박사(정민성), 권력자 아들때문에 살인범으로 몰린 유대위(정해인) 등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다룬다. 마약을 복용한 강남 부잣집 아들 한양(이규형)과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등 특이한 인물도 있다. 물론 가족도 친구도 없이 외로움을 키우는 민철(최무성)도 있다.

이들은 서로 조금 다른 부류이긴 하지만 수많은 취재를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수준 있는 장르물을 맛본 시청자에게 전형적인 캐릭터로는 공감시키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길은 철저한 취재를 통해 리얼리티를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신원호 감독과 정보훈 작가팀은 무려 1년 넘게, 응답 시리즈의 3개 드라마를 만들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도관이나 수인 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취재했다. ‘응답’ 시리즈때부터 시도했던, 이런 드라마 제작방식은 이제 시트콤이나 예능드라마가 아닌 드라마의 의미있는 제작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를 작가의 예술이라 부르듯, 대부분의 드라마는 작가가 써주는 대본을 드라마 감독이 받아 연출하는 것이다. 승률이 높은 작가, 내공 있는 작가, 트렌드를 잘 읽는 작가가 있지만 이런 방식은 ‘복불복’ 같은 면도 있다.

하지만 ‘감빵생활’은 신원호 PD와 이우정, 정보훈 작가팀이 처음부터 오랜 기획회의를 통해 아이템을 잡고 취재를 거쳐 수많은 에피소드를 모아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들은 모두 피디와 작가가 공유한다.

그래서 감옥에 갔다온 사람들이 봐도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 몰래 반입한 담배를 화장실에서 피우려고 변기에 호스를 꽂고 연기를 몰래 내보내는 방법이나 온수의 순간온도를 올린 라면 끓이기 대작전, TV 채널 하나밖에 볼 수 없는 현실에서 OCN에서 방송되는 ‘영웅본색’ 시청하기 등의 에피소드는 생생한 이야기다.

에피소드들이 워낙 생생하고 탄탄해 캐릭터의 갈등 구조가 아니라도 캐릭터 자체와 캐릭터끼리의 관계에서 감정선만 제대로 연결시키면 공감을 이끌어낸다. 신원호 PD 팀은 영리하고, 영민하고, 영특한 크리에이터이다. 스타 배우도 없이, 마니아성과 보편성을 다 잡지 않았는가.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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