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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Deoxyribose Nucleic Acid)는 염색체의 주요 구성 물질로 사람의 얼굴 형태, 체질, 혈액형, 성격 등 개개인의 생물학적 특징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어느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일 경우 ‘DNA가 남다르다’는 표현을 쓴다. ‘부전자전’이라는 말도 DNA와 연관된 것이리라.
수 많은 스포츠 스타의 자녀들이 부모의 대를 이어 운동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축구의 차범근, 야구의 이순철, 농구의 허재의 자녀가 대를 이어 그 분야의 스포츠 스타로 활동하고 있다. 배구의 장윤창의 경우는 아들이 프로 농구 선수로 뛰고 있다.
LA 한인 타운에도무려 3대에 걸친 축구 집안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전 세계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음식점을 경영하며 아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커 대디’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 축구 DNA

강대준 대표의 아들 용민(13)군은 현재 LA 갤럭시 유소년 팀 소속이다. 가디나에 있는 카톨릭계 사립 학교에 다니고 있는 용민군은 지난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는 갤럭스 입단 테스트를 나흘만에 거뜬히 통과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보통 입단이 확정될 때까지 걸리는 테스트 기간은 3개월로 수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스페인에서 2년간 축구 유학을 한 용민군의 뛰어난 실력이 갤럭시 구단 관계자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이다.
# 비운의 축구 선수에서 일류 요리사로

강대준 대표와 아들 용민군(오른쪽)은 부자지간이라기 보다 마치 친형제같다. 서로 팔씨름을 힘겨루기를 하는 표정에서도 아들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넘친다.<사진=이은호 작가>
축구 선수가 된 이후 제대로 수업에 참여한 적이 없었기에 무엇을 할 지 앞이 캄캄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요리였다. 생전 처음 해 보는 것이었지만 적성에 잘 들어 맞았다.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실전 경험을 쌓다 군대에 입대했다. 여기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때마침 국방장관의 요리병이 전역을 앞두고 있었던 상황에서 수 많은 경쟁자를 뿌리치고 후임으로 발탁된 것이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축구 선수 시절의 혹독한 훈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비록 축구 선수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는 기쁨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 연중무휴
제대 후 그의 첫 번째 일자리는 부페 식당.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하다 보니 오전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 이른 새벽부터 신문 배달도 함께 했다. 축구 선수로 다져진 체력 때문에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이 결코 힘들지 않았다. 심지어 주말에는 조기 축구회까지 나가 볼을 찼다. 대학 2학년까지 선수 생활을 한 그는 조기 축구회의 수퍼스타였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못 다 이룬 축구 선수의 한을 푸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던 중 또 한 명의 은인이 나타났다. 함께 축구를 하는 동료가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주택은행의 대출계 과장이었는데 늘 밝은 모습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를 믿고 선뜻 1천 만원을 대출해준 것이다.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 둔 후 보증금 500만원 짜리 포장마차를 경기도 하남시에서 시작했다. 3평 남짓한 규모였지만 1년 365일 24시간 포장마차에 매달렸다. 그로부터 정확히 3년 후 그는 콩나물 삼겹살 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아사달’이라는 식당 주인이 됐다.
위치는 좋지만 경영난에 허덕이는 식당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년에 한 개 꼴로 식당을 인수한 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며 재산 증식에 나섰다. “처음 포장마차를 한 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열심히 뛰다 보니 운이 좋게도 실패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포장마차를 시작할 때 빌린 1천만 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빌린 돈이 됐죠.” 아무리 몸이 고단해도 손님을 맞이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었던 축구 선수 시절보다는 그래도 쉽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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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커 대디
현재 한국에서 그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는 3군데다. 남한산성 근처에서 성황을 이루고 있는 ‘복가’를 비롯해 주점과 노래방도 하고 있다. 식구들이 지낼 번듯한 집과 상가도 장만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사업체의 사장님이 됐지만 늘 그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허전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다행히 아들과 딸 모두 축구에 소질을 보였다.
8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용민군이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과감히 스페인 조기 유학을 결심했다.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 전 세계 최고라는 스페인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지만 18세 이전에는 프로팀의 선수로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FIFA의 규정에 묶여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국으로 유턴을 고려하던 중 선배인 정재권 한양대학교 감독의 소개로 미국행을 결심했다. 정 감독의 절친으로 포항 스틸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김기남 코치가 LA에 정착해 후진 양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기남 코치의 제자 중 한 명이 갤럭시 유소년 팀을 거쳐 현재 육군사관학교를 다니는 케이스가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
“갤럭스 유소년 팀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입단을 결심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본기를 잘 다진 후 기회가 된다면 용민이가 가장 좋아하는 홍정호 선수처럼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시키고 싶어요.”
강대표 부자의 일과는 매우 분주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용민군이 학교 수업과 축구 훈련, 그리고 학원 공부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를 넘기기 일쑤다.
아직 아내와 딸은 한국에 남아있기 때문에 용민군의 뒷바라지는 전적으로 강대표의 몫이다. “이제 10살인 딸도 축구를 하고 있어요. 학교에 여자부가 따로 없어 남자 선수들과 어울려 볼을 찰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네요.” 불판의 돼지고기를 능숙한 솜씨로 넘기면서도 팔불출 아빠의 자녀 자랑은 끊이지 않았다.
손건영 기자
●복가는…
한인타운 중심지에 위치한 ‘복가’는 복요리 전문점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용민군 뒷바라지를 위해 비즈니스를 물색하던 강 대표에게 이 곳이 눈에 꽂혔다. 현재 한국에서도 남한산성 인근에서 운영하고 있는 식당 이름과 같다는 점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요인이 됐다.
‘좋은 재료로 최상의 맛을 내고 성실하게 일을 한다면 식당 비즈니스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은 불과 두 달여 만에 현실이 됐다. 전 주인과는 달리 ‘복가’의 메뉴는 복가초벌BBQ, 된장 샤브샤브, 아구찜이 대표적이다.
최고급 돼지고기 전문점답게 ‘유기농 누드 생 삼겹살’, ‘모가지 등심’, ‘항정살’을 주방에서 초벌 구이를 한 후 테이블에 내놓는다. 그야말로 돼지고기의 재발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뛰어난 육질에 씹는 맛이 일품이다.
샤브샤브는 한국식을 접목했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된장을 푼 국물에 유기농 채소와 고기를 익혀 먹으면 기존 샤브샤브의 느끼한 맛을 찾아볼 수 없다. 끓일수록 우러나는 담백한 맛은 절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게 만든다. 여기에 건강식 비빔밥과 큼지막한 사이즈의 지짐이는 샤브샤브와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가장 사랑 받는 술 안주의 하나인 아구찜도 별미다. 천연 재료로만 만든 매콤한 소스의 고운 빛깔은 입맛을 절로 돌게 만든다. 쫀득쫀득한 아구와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의 절묘한 조화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소주잔을 든 주당들의 손을 바빠지게 만든다.
10여 년간 이어져 온 강대표의 신념처럼 ‘복가’ 역시 1년 365일 내내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문을 연다. 간혹 저녁 시간 전이나 주말에 방문하면 미래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용민군이 맛있게 밥을 먹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손건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