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말과 글 사이…한강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지음
문학과지성사

소설가 한강이 첫 시집을 냈다. 소설가가 시집을 내는 일이 더러 있지만 한강에게는 그게 마땅히 그래야 할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건 그의 소설에서 감지되는 섬세한 감수성과 시적인 그늘 탓이 크다. 그의 등단 20년, 8권의 소설을 써내며 틈틈이 쓰고 발표한 시 60편이 엮여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로 나왔다.

“어느/늦은 저녁 나는/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밥을 먹어야지//나는 밥을 먹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의 시는 고요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피 흘리는 혀와 입술의 투쟁이 있다. 말과 글의 비좁은 그 의미 속으로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 ‘연둣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감기’는 그런 투쟁이 시작되는 저녁은 깊어지고 치열해져 새벽에는 ‘너덜너덜 넝마’가 돼 실핏줄이 검게 다 마를 지경이 되지만 그때야 푸른 입술은 열린다. 말과 동거하는 숙명을 안은 시인의 존재와 언어의 시세계가 뜨겁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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