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50인 미만 확대 시행되자…중기 “추가 채용 동결…성장 포기”

지난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업종과 무관하게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 이에 건설,제조업은 물론 소상공인들까지 인력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연합]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지난 27일 시행에 들어갔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무대책’ 상태라고 했다. 고용 규모가 커지면 사고 위험성도 같이 커지는데, 그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채용을 계속할 수 있겠냐고 주장한다. 한 빵집 사장은 현재 6명인 고용 인원을 4명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지난 27일부터 새롭게 중처법 적용 대상이 된 사업장은 5인 이상 50인 미만인데, 이를 비켜가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소규모 사업장에서 중처법 때문에 채용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중처법 시행 당일인 지난 27일 토요일 수도권의 한 건물 유지·보수 건설업체 관계자는 “법이 시행됐다고 일과에 변동이 생긴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상시근로자 수 12~13명을 유지하고 있는데, 아침 조회 시간에 ‘오늘 하루 안전하게 작업합시다’, ‘안전모 잘 착용했는지 확인하세요’, ‘2인 1조로 작업하세요’ 등 주의사항을 구두로 전달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 관계자는 “중처법 시행 전부터도 하고 있던 것이고, 앞으로도 (안전 관련 대응이)기존에 하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원래도 작업자들은 자기가 다치는 게 싫어서 조심해서 작업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안전관리자도 소장이 겸직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자격증 갖춘 사람을 뽑기에는 직원수 12명 회사에 너무 큰 인건비 부담이 된다. 그리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뒤부터가 문제다. 지금 당장 절박한 느낌은 없다”고 털어놨다.

울산광역시 소재 페인트 및 합성수지 생산업체의 김 모 상무도 “보통 중소기업들은 중처법 뿐만 아니라 이런 법들에 대한 대처가 항상 ‘터지고 나면 대응하는 식’”이라며 “여력이 없는데 벌써부터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고, 또 그동안 여러번 많은 법들이 수차례 유예되고 번복되는 걸 보면서 학습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년 전 52명이었지만 중처법 시행을 1년 더 유예하고자 49명으로 감원했다. 김 상무는 지난 1년 동안 공공기관, 지자체에서 하는 중처법 관련 강연을 찾아다니며 정보 수집에 나섰고, 1000만원을 들여 안전보건관련 컨설팅업체에 컨설팅까지 받았다. 안전보건관리자도 따로 채용하며 준비를 마쳤다.

김 상무는 “어찌저찌 준비는 해놓았지만 그간 불안이 극심했고 정부에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며 “강연은 듣고 뒤돌아서면 항상 ‘그래서 무얼 준비해야 하는건가’ 의문이 남았다. 매번 처벌이 어떻다느니 겁만 주고 솔루션은 제공하지 못하는 자리들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 회사는 고용을 더 이상 할 생각이 없다”며 “50명이 일하다가 사고 나는 비율하고 30명이 일하다가 사고 나는 비율 중 어느 쪽이 더 높겠나. 그러니까 회사를 더 키우는게 더 힘들게 된 셈”이라고 밝혔다.

대구에서 46명 규모로 섬유 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손 모씨도 “현재 직접비, 즉 인건비, 각종 공공요금 인상,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담 등이 한꺼번에 덮친 상태라 안전관리 전담 직원 채용이 어렵다”며 “준비는 해야겠지만, 여력이 없어서 꼼짝 못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손 대표는 “직접비가 증가하니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고, 가격 경쟁력 약화로 중국산에 밀릴 판”이라며 “여기에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대표를 구속하는 법까지 더해지니 앞으로 우리나라에 제조업은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저 역시 더는 회사를 성장시킬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처법을 먼저 적용받은 50인 이상 중기에서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직원들에게 체감되는 안전상 변화는 미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120여명이 일하는 경기도 시화공단의 한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는 지난해 봄 1명이 있었던 안전관리자를 추가로 채용해 안전 전담팀을 구성했었다.

이 회사 관리자급 인사는 “대기업 고객사에서 심사 나올 때마다 요건을 갖췄는지를 계속 점검해서 안전 분야를 강화하게 됐다”며 “하지만 안전관리 직원을 더 뽑은 것과 일반 직원들이 일하는 작업장 환경에는 큰 연관이 없다. 작업장 곳곳에 ‘중량물을 들 때 자세를 어떻게 취하라’는 등의 포스터가 붙은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밝혔다.

한편, 제조업, 건설업체들은 ‘추가 채용 동결’을 말하는 한편, 소상공인들은 적극적으로 5명 미만으로 직원 수를 줄일 지까지도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바이트 직원 2명을 포함해 상시근로자 6명인 서울 서대문구의 N베이커리 사장은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운영해왔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모르는 것 아니냐”며 “좀 지켜보다가 아르바이트 2명을 내보낼 지 결정하겠다. 하지만 이 법을 피해가자고 남은 4명으로 가게를 돌리려니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하나 벌써부터 억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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