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하던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전세사기 경고문구가 붙어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148억원대 전세사기로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그 중 4명은 극단 선택까지 하게 만든 이른바 '건축왕'에게 사기죄의 법정최고형이 선고됐다. 판사는 법에 정해진 제한 때문에 '처벌이 부족하다'며 사기죄의 법정최고형량을 높이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는 7일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건축왕' 남모(62) 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범죄 수익 115억5000여원 추징을 명령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 공범 9명에게는 각각 징역 4∼13년을 선고했다.
징역 15년형은 사기죄의 법정최고형이다. 사기죄의 법정형은 징역 10년 이하이지만 남 씨와 같이 2건 이상의 사기를 저지른 피고인에게는 '경합범 가중' 규정에 따라 법정 최고형에서 최대 2분의 1까지 형을 더할 수 있다.
남 씨는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서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2700채를 보유해 건축왕으로 불렸다. 그의 일당은 2021년 3월 ~ 2022년 7월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빌라 등 공동주택 191채의 전세 보증금 148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전체 혐의 액수는 453억원(563채)이지만 이날 재판에서는 먼저 기소된 148억원대 사기만 다뤄졌다. 나머지 305억원대 사기는 별도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오 판사는 "피고인들은 사회초년생이나 노인과 같은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범행해 동기나 수법이 매우 불량하다"며 "피해자는 191명, 피해액수는 148억원으로 막대하고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은 대출을 받거나 일하면서 모든 전 재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 씨는 주택 2708채를 보유하면서 스스로 탐욕에 따라 피해를 준 부분에 큰 죄책감을 져야 한다"며 "사회공동체의 신뢰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는데도 변명을 하면서 100여명의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하게 하면서 고통을 줬다"고 지적했다.
또 "생존 기본 요건인 주거환경을 침탈한 중대 범죄를 저지르면서 20∼30대 청년 4명이 전세사기 범행으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며 "그런데도 국가나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재범 우려도 크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오 판사는 이날 선고공판에서 이례적으로 사기죄의 법정최고형 형량을 높이도록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오 판사는 "사기죄에 대해 선고할 수 있는 한도는 징역 15년에 그치고 있다"며 "현행법은 인간 생존의 기본 조건인 주거의 안정을 파괴하고 취액계층의 삶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사회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질적인 사기 범죄를 예방하는 데 부족하다"고 했다.
검찰은 앞서 지난달 17일 결심공판에서 A 씨에게 징역 15년을, 공범 9명에게는 징역 각각 징역 7∼10년을 구형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로 구성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는 선고 직후 "남 씨 일당에게 조직적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수천세대에 이르는데 이들의 형량은 너무 낮다"며 "공범 전원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반드시 적용해 법이 허락하는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