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국회의원 ‘등용문’이 되고 있다.
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거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을 확정한 기재부 출신 후보는 총 6명이다. 이 가운데 4명은 우리나라 예산 편성을 총괄하는 기재부 2차관을 지낸 경력이 있다. 세종 관가에선 이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하면 행정부 뿐 아니라 입법부에서도 이른바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입김이 거세질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8일 정치권과 세종 관가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22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로 공천을 확정 받은 기재부 출신 후보는 모두 6명이다. 정당 별로 국민의힘 후보가 5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명이다.
국민의힘에선 김완섭(강원 원주을), 방문규(경기 수원병), 이종욱(경남 진해), 송언석(경북 김천), 추경호(대구 달성군) 등이 공천을 확정했다. 이 중 김완섭(강원 원주을), 방문규(경기 수원병), 이종욱(경남 진해) 후보 등 3명은 처음 국회의원 뱃지를 노리는 정치 신인이다. 송언석, 추경호 후보는 모두 3선에 도전한다. 이명박 정부 기재부 2차관을 지낸 류성걸 후보는 1월 22일 TK(대구·경북) 현역 의원 중 가장 먼저 예비후보등록을 마쳤지만, 사실상 공천 배제됐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강원 원주시 한 카페에서 '함께 누리는 문화' 공약 발표를 마친 뒤 원주갑·을 후보로 단수 공천된 김완섭 전 기재부 2차관, 박정하 수석대변인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
더불어민주당에선 안도걸(광주 동남구을) 후보만이 출마를 확정지은 상태다. 세종 관가에선 기재부 예산실 과장 출신인 조인철 전 광주시부시장도 곧 민주당 광주서구갑 후보 공천을 확정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에도 기재부 전신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김진표 21대 국회의장 등이 있고, 문재인 정부에서 2차관을 지낸 김용진 전 차관 등도 김동연 경기도지사 출마를 계기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지만, 현재로선 안 후보가 유일한 기재부 출신 후보다.
안도걸 전 기재부 2차관이 광주 동·남을 지역에서 현역 이병훈 의원을 꺾고 본선에 진출하기 전인 지난 2월 5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식당에서 만나 환담하고 있다. [헤럴드경제 DB] |
각 출신 부처별로 국회의원 후보를 이렇게 많이 낸 부처는 기재부 뿐이다. 경제부처 고위공무원 출신 후보 중 기재부 출신이 아닌 인물은 국민의힘 경기 수원갑 후보로 공천을 확정한 김현준 국세청장 정도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예산실’ 출신이다. 기재부에서 ‘예산’을 총괄하는 2차관 출신만 김완석, 방문규, 송언석, 안도걸 등 4명이다. 이들은 모두 ‘예산 전문가’라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지역 예산 확보에 유리하다는 구태의연한 공약도 여전하다.
반면 예산실이 아닌 세제실 출신들은 공천에서 탈락한 경우가 많다. 국민의힘 후보로 경남 진주을에 출마한 김병규 전 세제실장이 공천에서 탈락했고, 마찬가지 세제실 조세총괄정책관을 거쳐 문재인 정부 방위사업청 차장을 지낸 한명진 전 차장도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에서 컷오프됐다. 다만 예산실 출신이라고 100% 공천을 받은 건 아니다. 대구 서구에 출마한 이종화 전 대구시 경제부시장과 광주 동·남갑에 출마한 노형욱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재부 예산실 출신임에도 공천 받지 못했다.
세종 관가에선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기재부 출신들이 검찰에 이어 입법부 내에서도 세력화 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 부처의 과장급 인사는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주요 요직을 기재부 출신들이 차지하고 인사에서 영향력을 미치며 서로 끌어준다는 말이 나오지 않느냐”며 “이번 총선에 기재부 출신이 대거 출마하는 것은 국회 내에서도 기재부가 검찰, 한국노총 등에 이은 거대 세력이 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