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홍콩 ELS 판매사 최대 100% 배상해야”…배상기준 발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1일 홍콩 H지수 ELS 분쟁조정 기준안을 발표하고 판매사에 자율 배상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사진은 이 원장이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2024년 업무계획을 밝히는 모습. [금융감독원 제공]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금융감독원이 대규모 손실이 발생 중인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과 관련한 현장검사 결과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를 확인하고, 투자손실의 0~100%를 배상하도록 하는 분쟁조정 기준안을 내놨다. 100% 전액 배상은 역대 최고로, 본점 차원의 내부통제 부실에 사태의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는 향후 판매사들이 사적화해 절차를 통해 자율 배상을 실시할 때 적용할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금감원은 검사 결과 확인된 위법부당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조치하는 한편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홍콩ELS 검사결과 불완전판매 확인

11일 금감원이 발표한 11개 주요 판매사(은행 5개·증권사 6개) 대상 현장검검 결과에 따르면 ▷판매정책·소비자보호 관리 부실 ▷고객 투자성향 고려 소홀 등 판매시스템 부실 ▷영업점 단위 개별 판매과정의 불완전판매 등 다양한 불완전판매가 확인됐다.

2019년 파생결합증권(DLF) 및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되는 등 소비자보호 장치들이 대폭 강화됐음에도 불구하고 판매과정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이다.

우선, 판매사들은 H지수 변동성이 확대되는 시기에 ELS 판매를 확대하도록 핵심성과지표(KPI)를 설계해 전사적으로 무리한 실적경쟁을 조장하면서도, 판매한도를 상향하도록 리스크관리 기준을 변경하고 비예금상품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등 소비자보호에 소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고위험 상품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고객에게 판매가 가능하도록 상품판매 기준을 임의 조정하거나 판매시스템을 설계하고, 투자자 성향분석 필수 확인항목을 누락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ELS 상품 판매시 설명해야 하는 손실위험 시나리오, 투자위험등급 유의사항을 누락·왜곡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업점 판매과정에서는 안정적 투자성향의 고객에게 투자성향 상향을 유도하거나 청력이 약한 고령투자자에게 상품내용을 ‘이해했다’라고 답하게 하고, 영업점 방문이 어려운 투자자를 대신해 투자성향 조사, 가입신청 등을 대리 작성·서명하는 사례까지 발견됐다.

이 같은 불완전판매로 대규모 손실 발생이 불가피하다. 작년 12월 말 기준 홍콩 H지수 ELS 판매잔액 18조8000억원 중 개인투자자 판매분은 17조3000억원이다. 전체 잔액의 80.5%인 15조1000억원의 만기가 올해 도래할 예정인데, 이미 1~2월 만기도래액 2조2000억원 중 1조2000억원이 손실이 확정됐다. 손실률은 53.5%다.

금감원은 H지수가 2월 말 수준(5678포인트)을 유지할 경우, 연내 추가 손실금액은 4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상반기 4조8000억원, 하반기 1조원 등 총 5조8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배상비율 ‘기본 20~40%±α’…0~100% 배상 가능

[금융감독원 자료]

이에 금감원은 판매원칙을 위반한 판매사에 기본 20~40%에 판매사·투자자별로 배상비율을 가감하도록 하는 분쟁조정 기준안을 내놨다. 이를 적용하면 손실에 대해 최대 100%까지 배상이 가능하게 된다. 전액 배상은 전례 없는 수준이다. 역대 최고 기록은 2019년 해외금리연계 DLF 사태 때의 80%였다. 다만, ELS 투자경험, 투자금액 등에 따른 차감요인을 둬 배상비율이 0%가 될 수도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손실 배상비율은 검사결과 확인된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별 특성을 고려한 투자자 책임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면서 “판매사 측면에서는 판매원칙 위반 정도가 크거나 소비자보호체계가 미흡할수록 배상비율이 높아지고, 투자자 특성에 따라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 예적금 가입 희망 고객 등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경우에는 배상비율이 가산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그러나 “ELS 투자경험이 많거나 금융지식 수준이 높은 고객 등에 대한 판매는 배상비율이 차감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부당권유 등 판매원칙 위반에 따라 기본배상비율 20~40%(은행은 30%)가 적용된다. 은행의 경우, 영업점 검사와 민원조사를 통해 적합성 원칙 또는 설명의무 위반이 일괄적으로 지적됐다.

여기에 불완전판매를 유발한 판매사의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고려해 은행은 10%포인트, 증권사는 5%포인트를 공통적으로 가중하기로 했다. 투자자 책임이 더 큰 온라인 채널은 은행 5%포인트, 증권사 3%포인트가 적용된다. 즉, 판매사 책임에 따른 배상비율은 기본·공통가중 요인을 모두 고려해 23~50%가 된다.

투자자별 특성도 고려한다. 가산요인은 ▷예적금 가입목적 10%포인트 ▷금융취약계층 5~15%포인트 ▷ELS 최초 투자 5%포인트 ▷자료 유지·관리 및 모니터링콜 부실 5~10%포인트 ▷비영리공익법인 5%포인트 등 최대 45%포인트까지 적용된다.

이 가운데 금융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만 65세 이상 고령자, 은퇴자, 주부 등은 배상비율에서 5%포인트, 만 80세 이상 초고령자, 의사소통 장애시 10%포인트를 가산하고, 고령투자자 보호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추가로 5%포인트를 얹어주기로 했다.

투자자 책임에 따른 차감요인도 최대 45%포인트 반영된다. ELS 투자경험에 따라 2~25%포인트, 가입·수익규모에 따라 5~15%포인트가 배상비율에서 차감된다. 금융회사 임직원 등 일정 수준의 금융지식이 인정되거나 법인의 경우 5~10%포인트가 깎이게 된다.

이밖에도 가산·차감항목에서 고려되지 않은 사안이나 일반화하기 곤란한 경우에 기타조정항목을 통해 ±10%포인트까지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투자성향평가 종료시각과 계좌개설시각 간 간격이 10분 이하인 경우 배상비율을 5%포인트 더할 수 있다.

금감원, 분쟁조정 진행·제도개선 추진…“자율배상에 적극 협조” 당부

금감원은 과거 DLF, 사모펀드 사태 등 대규모 분쟁 사례를 참고하되 개인투자자의 반복 가입이 많은 공모펀드라는 이번 사태의 특수성과 상품 특성, 판매채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도록 정교하고 세밀하게 분쟁조정 기준안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이번 기준안에 따라 대표사례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분쟁조정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다. 각 판매사도 기준안에 따라 향후 투자자와의 사적화해 절차를 통해 자율 배상을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검사에서 확인된 위법부당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엄중 조치할 예정이다. 다만, 판매사의 피해 배상, 검사 지적사항 시정 등 사후 수습 노력을 참작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이복현 원장도 자율배상을 실시하는 판매사에 대해서는 제재시 감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원회와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도 추진한다. 검사 결과 분석과 해외사례 연구,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산업 발전을 균형있게 고려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 개선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고난도 상품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한 ELS 상품에서 대규모 불완전판매가 발생한 만큼, 판매상품 범위 재검토도 이뤄진다.

이 원장은 이번 분쟁조정 기준안에 대해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충분히 보상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도 시장원리의 근간인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무거운 마음으로 심사숙고해 마련했다”며 “기준안에 따라 배상이 원활히 이뤄져 법적다툼의 장기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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