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유린”·“표현의 자유 억압”…‘블랙리스트 작성자’ 구속에 의료계, 규탄집회·후원 움직임도

의료계 집단행동 불참 의사와 의대생 명단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게시한 사직 전공의가 지난 20일 영장실질심사 후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작성·유포한 사직 전공의가 구속된 이후 의료계에선 정부가 전공의를 탄압하고 있다는 반발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자를 피해자라며 두둔했고 일부 의사 단체는 전공의가 인권 유린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규탄집회를 열었다.

23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전공의와 전임의, 응급실 근무 의사, 의대생 등 800여명의 신상 정보를 담은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게시한 사직 전공의 정모씨가 지난 20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의사 사회는 연일 정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정씨가 구속된 다음날인 지난 21일 서울 성북경찰서를 찾아 정씨를 만나고 “구속된 전공의와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분들 모두가 정부가 만든 피해자”라고 말했다. 임 회장은 또 “철창 안에 있는 전공의나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당한 전공의나 그 누구라도 돕겠다는 게 협회의 입장”이라며 정씨를 ‘피해자’로 지칭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21일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의사 명단을 작성·게재한 혐의로 구속된 사직 전공의를 면담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일부 의사 단체는 의료계 블랙리스트가 표현의 자유 수단이며 전공의 구속은 민주주의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블랙리스트 유포를 “정부의 초법적 조치에 대한 저항 수단”이라고 표현하며 “앞에서는 대화를 청하면서 뒤로는 검경을 통해 겁박하는 것이 현 정부의 행태”라고 주장했다. 전라북도의사회도 성명문을 내고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노력해 온 의사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행위를 범죄로 몰아가는 공안 통치의 전형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지난 21일 서울 이태원 인근에서 전공의 구속은 인권 유린과도 같다며 규탄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단체는 “투쟁과 의사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국가의 기본 요소이고, 이런 정도의 소극적 의사 표현조차 말살하는 것은 북한 수준의 인권 유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 전용 커뮤니티에서는 구속된 정씨를 후원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후원금 계좌가 안내되고 입금을 인증하는 게시물들이 다수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들이 의사 사회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해자를 돕자는 목소리만 커지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 중에선 자신의 신상이 공개돼 대인기피증을 겪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는 이번 의정 갈등 해소를 막는 걸림돌이었다. 정부가 유화책을 내놓으며 의료계에 복귀나 대화를 요청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등장해 의료계 내 다른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차단했다.

정부는 블랙리스트에 대한 엄정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모두발언에서 “블랙리스트는 환자 곁을 지키는 의료진들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며, 개인의 자유의사를 사실상 박탈하는 비겁한 행위”라며 작성·유포자를 추적해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8일 그동안 블랙리스트를 유포하거나 의사 커뮤니티에서 근무 중인 의사를 공개 비방한 43건을 수사 의뢰했고, 수사 기관이 32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