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서 다시 쓰는 문명역사①괴베클리테페 현장

세계신석기학회 1천명 학자 탐방


강인욱 교수


세계 곳곳에서는 수많은 문명이 알려졌고, 또 지금도 새로운 문명의 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하며 세계의 고고학자들을 경악시킨 문명이 있으니 바로 1만2500년전에 튀르키예의 동남쪽에서 등장한 괴베클리 유적이다.

1994년에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빙하기가 끝날 무렵 거대한 마을도 없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석기로 만든 돌칼 정도의 도구만으로 높이가 4m 넘는 신전을 세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괴베클리가 존재한 샨르우르파를 중심으로 하는 터키의 동남부에서는 약 200㎢의 범위에 비슷한 석조 기념물을 세운 신전들을 만들었음이 밝혀졌다.

괴베클리와 관련유적을 통칭하기 위해 ‘타시 테펠레(Tash Teperer)’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돌 언덕들’이라는 뜻이니 거석신전들의 모임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괴베클리테페 조각상[이하 강인욱 교수 촬영]


올해 11월 4~8일 괴베클리와 비슷한 유적이 집중되어 샨리우르파에서는 전세계의 고고학자들이 세계신석기학회(World Neolithic Congress)가 개최되었다. 전세계 487기관의 1000명 넘는 고고학자들이 모여서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 그리고 거석문화를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3박5일의 숨가쁜 일정으로 그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구석기시대에서 빙하기를 거쳐 신석기시대로 바뀌는 수천년 동안 지구는 점차 더워지면서 얼음으로 덮여 있던 들판 곳곳은 범람하기 시작했다.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그의 명저 ‘황금가지’에서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같은 ‘대홍수의 이야기’가 근동지역은 물론 중국, 미 대륙 등 세계 곳곳에서 모두 존재한다는 점을 밝혔다.

제주 (노아의) 방주교회


괴베클리 유적의 발견으로 볼 때 전세계 대홍수의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기후 스트레스를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 괴베클리와 주변지역을 답사하니 모든 사원유적들은 공통적으로 평원의 높은 언덕빼기에 만들어졌다.

새롭게 바뀐 기후에 맞춰서 범람을 피해 언덕 위로 몰려들었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 혼돈의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으고 질서를 세우면서 공동의 기념물을 만든 것이 바로 괴베클리 신전의 시작인 셈이었다. 굳이 비유하면 팔만대장경을 만들며 국난을 극복하려했던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대형 석조물을 만들던 괴베클리인들의 솜씨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주변 여러 지역으로 스며들면서 인류 문명 발달에 기여했다. 현지에서 발굴을 담당하던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솜씨가 이후 이집트나 근동지역 여러 곳의 발달된 기술 문명의 기초를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동물을 업고 있는 사람


샨르우르파 박물관은 제대로 보려면 하루가 꼬박 들 정도이다. 특히 괴베클리를 신전을 재현한 전시실과 수많은 석조 조각품으로 채워진 방에서는 이 거대하고 세밀한 조각들을 어떻게 1만2000년 전에 만들었는지 세계 각국 고고학자들의 경탄이 이어졌다.

특히 사람이 괴물을 업고 있는 듯한 조각상을 두고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정령의 힘을 빌어 접신하려는 모습이라고 해석하는 필자의 생각을 듣자 그제서야 수긍들을 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인상적인 유물은 두 손으로 가지런히 성기부분을 가리던지 아니면 과감히 노출하는 식의 남자 석인상이었다. T자형 석조물도 남성의 성기를 극대화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상을 뜻하는 한자 ‘祖’나 선비 ‘士’ 등도 남성의 성기를 묘사한 것이다. 성기 숭배는 지속적으로 노동력을 증가시키는 생산력의 상징이었다. 반면에 다른 신석기 문화와는 다르게 여성을 숭배하는 이미지는 거의 없었다. 수많은 가축을 도살하고 사냥을 하며 거대한 기념물을 만드는 과정은 남성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괴베클리에는 모두 20여개의 원형 사원이 모여있는데 상태가 좋은 4개가 전시되어 있다. 신석기시대라고 하면 흔히 흙으로 굽는 토기를 떠오른다. 돌보다 편리하고 쉬울 것 같지만, 괴베클리의 사람들은 돌을 매우 잘 활용했다. 4m가 넘는 거대한 돌을 만들어 세우는 돌의 장인들이 많았던 괴베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릇마저 돌을 갈아서 만드는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참고로 동아시아는 1만 5천년 전부터 세계 어느곳보다 빠르게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리고 곳곳에 암각화를 새기고 그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각지는 자신에게 맞게 다양한 유적을 창조했다.

경희대 사학과 강인욱 교수/ 정리=함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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