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방법론을 형상화한 그림 [이미지=UNIST] |
[헤럴드경제(울산)=임순택 기자] 울산과학기술원(UNIST)와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이 난치성 뇌암인 교모세포종의 항암제 내성을 무력화할 수 있는 핵심 단서를 찾아내 주목받고 있다.
UNIST 의과학대학원 안톤 가트너 특훈교수팀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이세민 교수팀, 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APE1’ 등의 유전자가 교모세포종의 항암제 내성 극복에 중요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19일 공개했다.
이 표적 유전자가 발현하는 단백질을 억제하는 약물과 기존 항암제인 ‘테모졸로마이드(TMZ)’를 병용하면 치료 효과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교모세포종은 환자 10명 중 9명이 5년 안에 사망하는 치명적인 뇌종양으로, 현재 직접적인 치료제로 사용되는 항암제는 TMZ가 유일하다.
TMZ를 포함한 대부분의 세포독성 항암제는 암세포의 DNA에 손상을 일으켜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암세포는 손상된 DNA를 스스로 복구하는 기전을 통해 항암제에 대한 내성을 획득, 치료를 어렵게 만든다.
연구팀은 이런 DNA 복구 기전과 암세포의 TMZ 내성 간 연관성을 규명하기 위해 19개의 DNA 손상 복구 경로에 관여하는 47개 단백질 유전자를 하나 이상 불활성화시킨 세포주를 제작했다. 이후 이들 세포주의 TMZ에 대한 민감도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분석 결과, 세포 내 APE1 단백질의 발현을 억제했을 때 DNA 복구에 관여하는 MMR 유전자가 결핍돼 TMZ 내성을 가진 세포조차도 항암제에 대한 민감성이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MMR 유전자 결핍은 TMZ 내성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APE1과 마찬가지로 ‘BER’이라는 DNA 복구 경로에 참여하는 MPG 단백질의 발현 억제는 항암제 민감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연구팀은 MPG 단백질 발현을 억제해도 항암제 내성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를 세포가 ‘TLS’라는 대체 DNA 복구 경로를 사용하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즉, TLS 경로에 관여하는 단백질 유전자 역시 항암제 내성 억제를 위한 새로운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와 관련한 추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항암제 내성과 노화 간의 연관성에 대한 새로운 단서도 제시했다. 노화 과정에서 축적되는 것으로 알려진 특정 DNA 돌연변이 패턴이 TMZ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세포에 축적된 DNA 돌연변이 패턴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TLS 중합 효소 중 하나인 ‘TLS 중합 효소 제타’가 노화와 TMZ 내성 세포 모두에서 돌연변이 축적의 주요 원인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동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DNA 복구 과정의 취약점을 표적으로 하는 항암 치료 및 노화 예방과 같은 정밀 의학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의 드미트리 이바노프 연구위원이 공동 교신저자로,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황태주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뉴클레익 애시드 리서치(Nucleic Acids Research)’에 12월 5일 자로 게재됐으며 한국연구재단과 기초과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