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증세·노란봉투법…주저앉는 韓 기업들

관세 압박에 기업들 실적 타격 이미 시작
2주 후로 예고된 반도체 관세 긴장 고조
법인세 인상·노란봉투법 개정 우려 확대


국내 기업들이 미국 관세 폭탄과 법인세 인상, 노란봉투법 통과를 앞두고 ‘3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경기 평택항 내 자동차 전용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차량들 [헤럴드 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압박으로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실적 쇼크가 현실화한 가운데 국내 정치권에서는 법인세 인상을 골자로 한 세제 개편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면서 기업들이 삼중고를 겪고 있다.

당장 미국과의 상호관세 협상 시한(8월1일)을 나흘 앞둔 시점에서 2주 후 반도체를 겨냥한 품목관세 발표까지 예고돼 국내 산업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무역협상 타결을 발표한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반도체 관세를 “2주 후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반도체가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인 만큼 반도체에 고강도 관세가 부과될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국내 반도체 업계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4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보다 123% 증가한 103억달러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시장의 팽창으로 반도체는 자동차와 함께 대미 수출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캐시카우’로 자리잡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를 묻는 질문에 “25%, 그리고 그 이상이 될 것이다. 관세는 1년에 걸쳐 훨씬 더 인상될 것”이라며 반도체를 겨냥한 관세부과 계획을 강조한 바 있다.

다만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경우 반도체 가격 인상으로 인해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부담만 더 키우는 꼴이 돼 실행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들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AI 서버 투자를 확대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고용량·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구매를 늘리고 있다. 현재 미국 내에서 마이크론 외에 마땅한 대체재가 없어 오히려 미국이 입는 타격이 더 클 것이란 전망이다.

산업계는 현재 진행 중인 한미 무역협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미국이 우리나라를 겨냥해 제시한 상호관세율은 25%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춰 우리 정부로서는 더욱 다급해졌다.

우리나라가 일본·EU보다 더 높은 관세율을 받아들 경우 수출 경쟁력에서 밀려 타격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미 관세 쇼크는 2분기부터 가시화된 상태다.

현대차·기아의 올해 2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6조366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6% 감소했다. 현대차는 2분기 실적발표에서 올해 하반기에는 관세 영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4월부터 수입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5월부터 자동차 부품으로 대상을 확대한 바 있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7% 가까이 급감한 LG전자 역시 콘퍼런스콜에서 “하반기 철강 관세 50% 및 상호관세로 인한 제품원가 상승으로 시장 가격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며 “미국 정부의 관세정책 변동성과 소비심리 위축 우려가 지속돼 가전 수요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고 전망했다.

미국발 관세 압박으로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 국내에서는 기업 규제를 강화한 법안이 쏟아지고 있어 이를 보는 재계의 속내는 착잡하다.

이달 3일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데 이어 정부와 여당은 더 센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 첫 세제개편안에는 법인세를 다시 1%포인트 올리는 내용이 포함돼 기업들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은 24%다. 지방세를 포함하면 26.4%다. 앞서 윤석열 정부가 최고세율을 기존 25%에서 1% 포인트 내렸으나 새 정부는 세수 부족을 이유로 다시 인상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의 중앙정부 기준으로 2014~2024년 법인세 추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OECD 법인세 최고세율(지방세 포함) 평균은 25.2%에서 23.9%로 1.3%포인트 낮아졌다.

인하한 국가가 18개국으로, 인상한 국가 11개국보다 많았다. 변동이 없었던 국가는 9개국이었다. 이 기간 우리나라는 법인세 최고세율이 24.2%에서 26.4%로 2.2%포인트 높아져 OECD 평균을 웃돌고 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도 향후 기업의 노사관계에 혼란을 야기할 규제로꼽힌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불법쟁의 행위에 대한 노조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24일 김영훈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회동에서“노조법 개정은 우리 노사관계와 경제 전반에 심각한 혼란과 부작용을 줄 수 있다”며 우려를 전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김 장관을 만나 “통상임금,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그동안의 (노동) 이슈였는데 최근에는 노조법 2·3조 개정 이야기가 들리고 정년연장 문제도 새롭게 나와 어떻게 되느냐가 저희의 현안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현일·고은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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