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구속 취소, 李 대통령 파기환송…불신 자초한 사법부, 불붙은 사법개혁 [비상계엄 1년-사법개혁]

윤석열 구속취소·이재명 공직선거법 대법원 선고 계기
민주당 사법개혁 과제에 찬·반 엇갈려
혼란스러운 상황, 사법부가 자초한 측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연합]


오는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년을 맞는다. 초유의 비상계엄에 대한민국은 대혼돈의 1년을 보내왔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결국 탄핵됐으며, 현재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김건희 여사 또한 마찬가지로 구속 상태로 법정에 서고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은 대한민국을 대대적인 개혁 국면으로 이끌었다. 사법부와 검찰, 그리고 시민사회의 대개혁이 진행 중이다. 본지는 비상계엄 1년을 맞아 각 분야의 변화된 모습을 진단한다.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12.3 비상계엄은 사법개혁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와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대법원 선고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사법부를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법조계에선 “민감한 시기에 사법부가 불신을 자초한 것”이라면서 사법개혁안에 대해 찬반으로 엇갈리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사법개혁 과제’는 ▷대법관 증원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 법관평가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 재판소원 제도 도입 ▷법 왜곡죄 신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폐지 등으로 요약된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대법관 증원이다. 민주당은 현재 총 14명인 대법관 수를 앞으로 3년간 1년에 4명씩 증원해 2028년까지 26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된 근거는 3심 병목 현상의 해소다.

대법관 증원 자체는 법조계에서 갑자기 등장한 주제가 아니다. 2018년 대한변호사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8%가 대법관 증원에 찬성했다. 대법원에 너무 많은 사건이 적체된 이상 효율화와 대법원 재판 심리 충실화 자체엔 공감하는 목소리가 많다.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 일시에 대법관을 다수 임명함으로써 사법부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대법관 증원 자체엔 동의한다”고 밝혔다. 대법관은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식이다.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에 대해서도 “찬성한다”는 의견이 많다. 판결문은 그 자체로 학술 연구의 대상이나 실무의 지침이라는 이유에서다. 재판의 공정성 확보와 국민의 알권리 충족, 전관예우 방지 차원에서도 공개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재판소원 제도 도입에 대해선 찬반이 갈린다. 재판소원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찬성하는 측에선 사법 역시 공권력 행위이므로 심사·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 왜곡죄 신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에서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사실상 4심제로 운영돼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다. 동시에 현재의 대법원 사건 적체 현상이 헌재에서 재연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도 대학 특강 자리에서 “신속한 재판을 위해 대법관을 늘리자면서 4심제로 가겠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대 목소리가 다소 우세한 개혁 과제도 있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판사보다 외부 인사가 많은 13인 합의제 기구인 사법행정위원회를 만들어 대체하자는 과제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개혁안대로면 사법행정권은 사법행정위와 판사회의로 분산된다. 대법원장의 권한도 재판 업무로만 한정된다.

법조계에선 외부인이 사법 행정에 개입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판사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요직·한직에 배치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양심껏 판결하더라도 법원 조직이 외부 압력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보호막이 없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도 지난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사법부 독립은 법관 인사의 독립을 핵심적 요소 중 하나로 삼고 있다”며 “외부 권력기관이 법관 인사에 관여하는 것은 1987년 헌법에서 이룩한 삼권분립을 역사적으로 되돌리는 것이라 문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찬성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다. 행정처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지난 2017년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졌을 때도 제기됐다. 당시 행정처가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판사들의 성향이 담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 개혁 논의에 불이 붙었다. 이러한 행정처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개혁안을 두고 우려와 기대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법조계에선 “사법부가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상고심은 대선을 33일 앞두고 나왔다. 민감한 시기에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빠른 결론을 내리며 유죄 취지로 판결했다.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9일 만의 결론으로 당시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숙고의 기간을 거치지 않은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대선후보 자격 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판결에 대해 민주당은 ‘사법부의 대선 개입’이라며 사법 개혁의 불씨를 당겼다. 지난 3월 지귀연 부장판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결정을 내리며 구속기간 만료일을 ‘일’이 아닌 ‘시간’으로 따져야 한 것도 거센 논란이 일었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정치적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는 사건에 이례적인 판단이 나오면서 사법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게 맞다”면서도 “외부적인 개입이 입증된 것은 아니므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속도와 방향으로 차분히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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