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도 세월호 참사도 정부 잘못으로 인한 비극”

입양이후 힘들었던 자신의 삶 담아
분노와 상실, 용서 · 치유로 껴안아

“월드컵서 한국과 맞붙는 벨기에
응원요? 어디가 이기든 다좋아”

지난 1971년, ‘입양요청, 피부색깔=꿀색’이라는 문구가 적힌 서류와 함께 비행기를 탔던 6세쯤의 전정식은 ‘운좋게’ 양부모의 선택을 받은 수십명의 한국인 소년소녀들과 함께 벨기에 땅을 밟았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외국으로 입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아동 20만여명 중 한 명이다. 한국명 전정식, 벨기에 이름 융 에낭(Jung Henin). 본명인지 입양 서류 속에 그냥 적혔던 것인지 모를 한국명 중 가운뎃자 ‘정’을 현지 발음대로 읽어 ‘융’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 그의 존재는 입양아 ‘최대 수출국’ 중 하나였던 한국사를 증명한다.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전정식 감독은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땅’을 밟았다. 그리고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피부색깔=꿀색’의 개봉을 맞아 최근 한국을 다시 찾았다.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더없이 뜻깊고 마냥 행복해야할 세번째 방문길이었지만, 그를 맞은 것은 참담한 절망과 한없는 슬픔에 빠진 고국이었다. 아이들을 어머니의 품으로부터 지키주지 못하고 수십만명을 해외로 떠나보낸 고국이 이번엔 뱃길에 올랐던 십대의 아이들을 차디찬 바다에서 꺼내지 못했다. 잔인한 시간을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오월의 봄날,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전정식 감독은 “(지금 닥친 상황이) 내겐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해외 입양이나 세월호 참사나 모두 근원적으로 정부의 잘못으로 인한 비극”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피부색깔=꿀색’ 한장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승객에게 대피명령조차 내리지 못한 선장과 선원들의 책임이 크지만, 근원적으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한국 정부의 잘못입니다. 한국같이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첨단 제품을 만드는 나라에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희생시키다니 말입니다. 해외입양 또한 마찬가지로 정부의 책임이며 잘못입니다. 많은 한국민들이 해외입양에 대해서 느끼는 것처럼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토로하지만, 그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정부의 잘못입니다.”

전정식 감독은 프랑스와 벨기에 등 유럽에서 ‘그래픽 노블’ (회화체의 그림과 소설형식의 글이 더해진 출판만화)작가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07년 영화와 동명인 그래픽 노블 시리즈 1권을 냈고, 몇 년간 연이어 3부작을 완성해 출간했다. 형제들이 많은 벨기에의 한 평범한 가정에 입양돼 커온 자신의 삶을 그린 작품이었다. 유달리 장난기가 많고 말썽도 많이 부리는 개구장이였지만, 때로는 부모에게 혼나고, 때로는 부모의 더없이 따뜻한 품에 안기면서 성장한 유년기는 남다를 것이 없었다. 단 하나, 아득하지만 또렷하게 거듭 찾아오는 기억, 한국의 이름모를 거리에서 홀로 굶주리고 헤매였던 과거가 자꾸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 뿌리없는 삶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오는 것 말고는. 전정식 감독의 분신인 영화 속 주인공 소년 ‘융’은 마을에 한꺼번에 입양돼 10여명 이상이었던 한국인 아이들을 피해다니고, 한때는 자신을 버린 조국 한국이 아닌 동양, 일본 문화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춘기에 들어서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던 소년은 점차 국적이나 인종, 피부색깔로 환원될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루고 가끔 다큐멘터리 실사 영상이 삽입된 영화 ‘피부색깔=꿀색’은 분노와 상실을 껴안는 용서와 치유,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다.

“영화보다 먼저 유럽에서 출간된 그래픽 노블의 경우엔 1권에서 어린 융의 분노를 집중적으로 그렸습니다. (양)어머니가 나쁜 계모같이 묘사된 부분도 있어요. 어머니께서 섭섭하셨는지 큰 반응이 없으셨어요. 2, 3권으로 가면서 제 감정의 변화를 그리죠. 그제서야 어머니께서 제 진심을 알고 감동받으셨다고 하셨어요. 이번 영화는 보시고 딱 한 마디 하셨어요. ‘고맙다’고.”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그에게 ‘한국’은 연애 중인 여인같은 존재다. 첫 방문에선 낯설었으며, 어느 정도 거리를 둬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두번재, 세번째 방문에서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됐다. 전 감독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져들면서 가끔은 불신, 다툼, 반목을 거듭하는 연애관계같다”고 했다.

그를 낳아준 나라와 키워준 나라는 공교롭게 지난 98년 월드컵에서 대결을 펼쳤고, 올해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맞붙는다. 전 감독은 “어디를 응원해야 할지 모르지만 한국이 이기거나 벨기에가 이기거나 다 좋다”며 “나는 타고난 낙관주의자”라고 했다. 낙관주의자로서의 면모는 영화와 그래픽 노블 속 유머로 드러난다. 축구 얘기가 나오자 “사실은 어렸을 때 축구가 좋았는데, 어머니는 발레를 시켜셨다”며 “축구를 하는 조건으로 발레를 해야 했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렇게 열 일곱살 때까지 배운 발레 실력은 세계 정상급의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의 오디션에 합격하는 실력까지 이르렀다. 물론 전 감독은 입단을 포기하고 그림에 전념했다.

그는 20여년전 브뤼셀의 한 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지금은 18살된 딸을 두고 있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항상 금발의 백인 여성만 좋아했다”며 “내가 아시아 여성과 결혼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18세의 딸은 이번 영화의 음악을 맡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친어머니에 대해 말하자면 분명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을 것이고, 나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살아왔을테니 다 용서했다고 말하고 싶다”며 “이 영화는 두 문화 사이에서 제 자리를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한 인간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HOOC 주요 기사]
[SUPER RICH] SNS가 무서운 회장님들
[GREEN LIVING]어버이날 선물로 당신의 목소리를…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