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을 신용 우선, 고객 위주 일처리 변함없어요.”


▲ 1983년 한미 에스크로를 창업한 조익현씨(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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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일과 차한잔 – 한미 에스크로 조익현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에 있어 에스크로(Escrow)의 역할은 중요하다. 지난 1983년 창립돼 가장 오래된 한인 에스크로 회사로 손꼽히는 ‘한미 에스크로’는 한인 부동산 시장의 디딤돌을 톡톡히 해온 곳이다. 한인 부동산 올드 타이머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한미 에스크로’ 조익현(71) 대표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은 아들 톰 조(45)씨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 주었지만 여전히 ‘한미 에스크로’의 정신적 지주인 조익현씨를 만났다.
 
임문일(이하 임)= 부동산 거래에 있어 에스크로의 역할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공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태도가 생활화되신 듯 늘 한결같은 모습이십니다. 처음 ‘한미 에스크로’가 창립됐을 때와 지금의 업계 상황은 많이 변했지요?

조익현(이하 조)=
1976년도에 미국에 와서 냉동 장비회사 안전관리원으로 몇년 근무했지요. 그러다가 1980년도에 럭키 에스크로에 입사했습니다. 당시에 한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에스크로 회사였습니다. 럭키 에스크로의 황인조 대표와는 한국 고교 후배이면서 미 2사단 사령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이 있었는데, LA에 와서 그 인연이 다시 연결됐던 겁니다. 1983년 ‘한미 에스크로’를 창립하면서 그곳에서 나왔지요. 지금은 타운 내 한인이 운영하는 에스크로 회사만 20여 곳 이상 되는 걸로 알고 있으니 시장 규모가 그만큼 커졌다고 봐야지요.

임= 모든 일이 다 천성이 따라줘야 평생 직업으로 이어지는 법인데, ‘한미 에스크로’의 24년 역사를 이어, 이제 아드님이 후계자 수업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가업으로 이을 만큼 이 직업이 잘 맞으시는 모양입니다.

조= 에스크로는 부동산 거래에 있어 안전관리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20여년을 안전관리원으로 인한 경력까지 생각하면, 지금까지 50년을 ‘안전관리’를 위해 일해 온 셈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세이프티 맨’인 셈이죠.

임= 에스크로라 하면 지금은 여성들에게 맞는 직업으로 많이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 업계에 여성이 더 많아서인가요?

조= 우선적으로 꼼꼼하고 치우침없는 일 처리가 요구되니까 여성에게 맞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행정적인 처리가 많이 뒤따르기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경력과 전문성이 많이 요구되는 직업입니다. 사업적 목표를 가진 사람보다는 직업적으로 안정을 원하는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측면에서 더 여성적이랄 수도 있겠지요.

임= 요즘 부동산 시장이 많이 침체되고 있다는 하는데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곳이 에스크로가 아닐까 싶네요.

조= 상가 신축이나 콘도 개발 등 타운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게 불과 5~6년 전입니다. 장기적으로 시간으로 갖고 시장이 커 나갔다면 여러 측면에서 안정과 성장이 병행해서 이뤄질 수 있었겠지만, 급작스럽게 성장한 만큼 이제 그 후유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난 해까지는 그다지 시장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올 하반기 들어서면서 침체된 시장의 영향을 체감하는 상황입니다. 업계 전반이 30% 가량 실적이 떨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업체 규모에 따라 큰 타격이 되리가 봅니다.

임= ‘한미 에스크로’는 신생 업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장 어려움에 대해 복안은 있으신지요?

조= 그 부분은 요즘 늘 고민 대상입니다. 우선은 절약이겠죠. 직원들에게 일정하게 해주던 혜택이나 보너스도 조금은 줄여야겠고, 또 업계 전반에 걸쳐서는 인원 이탈이나 조정도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전체적으로 움츠러드는 상황임은 분명합니다.

임= 에스크로 오피서는 특별한 자격이 없는 걸로 아는데 그래서인지, 또 한편으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이란 생각도 한편으로 있습니다만…

조= 철저하게 제 3자로서 자금을 관리하고 분배한다는 점에서 에스크로의 자격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신용’입니다. 에스크로회사의 경우 기업국에서 사전통지없이 불시에 감사를 나옵니다. 언제 어느 때 감사를 받아도 무방할 정도로 명확하게 일처리를 해놓고 있어야 하는 거죠. 에스크로회사의 직원은 6개월 정도의 업무 처리로 일을 배울 수 있지만, 에스크로 매니저 라이센스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5년의 경력이 요구됩니다. 시작은 쉽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에스크로 자격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는 그리 녹록치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을 배우는 동안 최소 2~3년 정도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임= 에스크로 일을 배우고 싶다면 에스크로회사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는 셈이네요.

조= 제가 처음 에스크로 일을 할 때는 실무와 병행해 웨스트LA 칼리지에서 관련 수업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별도로 운영되는 학과나 수업 과정이 없으니 이쪽 업계에 입사하는 게 순서입니다.

임= 그런 점에서 타운 내에서 가장 오래된 ‘한미 에스크로’가 에스크로 사관학교 역할을 한 건가요?

조= (웃음) 많은 에스크로 인을 배출했습니다. 지금 한인타운에서 활동하는 에이전트나 에스크로 회사 주역들이 이곳 출신들이 많지요. ‘한미 에스크로’ 별명이 ‘에스크로 트레이닝 센터’ 아닙니까.

임= 장안에 자식농사 잘 지으신 분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데 아드님 얘기를 안할 수가 없지요.

조= 톰은 85년에 UCLA를 졸업한 공학도입니다. 졸업 후 8년 동안 항공기 제작회사인 휴즈에서 일하다가 1993년에 ‘한미 에스크로’에 합류했지요. 늘 곁에서 제 일을 도와주었지만, 사무실에 함께 출근하면서부터는 뭐라 말할 수 없이 든든한 제 버팀목입니다. 에스크로 일을 하면서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해 전문 에스크로 인으로서 자격을 고루 갖췄습니다. 제가 나이도 있고 해서 아예 ‘한미 에스크로’ 사장 직함을 줬는데 주류 쪽으로 아들 손님이 많아 고객의 반이 주류쪽입니다. 

임= 오랜 명성 못지 않게 ‘한미 에스크로는 까다롭다’라는 평가도 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 직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손님에게 잘난 척 하지 말라’입니다. 부동산 거래 몇번 한 손님은 에스크로 에이전트보다 일 내용을 더 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늘 정직하고 겸손하고, 손님에게 친절하고, 손님 위주로 생각하고, 계약대로 일을 처리하도록 당부합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신념에 변함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까다롭다는 평은 기업국에서 규제가 될 만한 일처리는 애초부터 거절하는 원칙적인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깨끗한 일처리가 지금까지의 신뢰로 이어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일에만 충실하다는 게 보기에 따라 융통성 없게 생각되기도 하는 거니까요. 


<조익현은 누구인가?> 

1935년생으로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조익현씨는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LA 한인타운 내에서 에스크로 업계 1인자로 통하고 있는 그는 71세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이라 아직도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20여년간 매일 아침 7시30분에 어김없이 출근하는 흐트러짐 없는 생활이 그 젊음이 비결이란다.

아내가 손수 해준 떡과 과일로 사무실에서 아침을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는 그는 자신의 건강비결을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생활로 꼽았다. 슬하 2남1녀에 5명의 손자를 거느리고 있다.

정해진 사무실 이외에도 한인 커뮤니티의 원로로서 활동도 활발한데 지난 94년 LA한인상의 이사장, 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씨의 남가주후원회 회장을 맡은 바 있으며 LA평통위원을 5차례나 역임했다.

나영순 기자 /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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