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칼럼] 미국 진출 한국기업의 역차별

최근 한국 기업들이 현지생산 공장 건설에 한창인 미 동남부지역에 중장비 기계음이 가득하다.
백인우월주의 색채가 유난히 짙은 동남부 지역에 게다가 미국의 원조를 받았던 나라의 기업들이 현지생산 공장을 짓고 콧대 높은 남부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에 한편으로 인간사 세옹지마(塞翁之馬) 라는 말이 떠오르고 또 한편으로는 가슴 한 곳에서 뿌듯함이 느껴진다.

조지아주 남쪽 도시인 웨스트 포인트시에 들어서고 있는 기아자동차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을 담당할 직원 모집을 최근 마감하고 본격적인 채용심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기아차 조지아 공장은 생산직 사원으로 2천500명의 직원을 채용할 계획이다.

또 기아차 조지아 공장건설과 함께 동반 진출한 이곳에 기아차 협력업체들의 채용인원도 3천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소가 뛰어 놀고 목화밭이 끝없이 이어지던 동남부 지역이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다.

농사짓는 일 외에 변변한 일이 없었던 이 지역 사람들 5천여 명이 한국 기업들이 들어옴으로써 소위 ‘때깔’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지역 신문들도 한국기업들로 인해 연일 장미빛 그림을 그리며 한껏 고무돼 있는 분위기다. 이민생활 속에서 조국의 기업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지역에 사는 한인들의 행운이고,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동남부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중에는 지역 한인사회에 애써 무관심하고 한인들과 다른 별개의 민족처럼 행동하려는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특히 규모가 큰 대기업의 현지 생산 법인일수록 한인사회에 대한 무관심 정도가 심해 한인동포들의 빈축을 사는 일이 많다.

이 지역에 진출한 어떤 한국 기업 관계자는 이 지역에서 한국회사라고 한인을 채용하면 다른 미국인 근로자들이 좋아하지 않고 회사 분위기도 나빠지기 때문에 가급적 한인 고용을 피하게 된다고 말한다. 백인우월주의 사상이 짙은 남부 특성상 이해는 어느 정도 가지만 그렇다고 그 분위기에 이끌려 회사직원 채용마저 미국인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현실은 서글프다.

외국 땅에서 생산활동을 하면서 현지인을 우선 고용하는 것이 현지화 전략이라는 점도 이해는 간다. 그렇다고 한국 기업이 현지인 눈치를 보며 한인 이민자들의 채용을 꺼린다면 이민자로 이루어진 이 나라에 살고 있는 타 민족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걱정이 앞선다. 시민권, 영주권 등 합법적인 신분을 가진 한인들이 한국기업에 들어가서 경제활동을 하고 세금을 내는 데 미국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는 지 묻고 싶다.

영어에 익숙하지 못한 한인들도 많지만 미국에서 나고 미국에서 자란, 미국문화에 익숙한 2,3세 한인들에게도 공평하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담이 안 통하더라도 적어도 팔을 굳이 밖으로 굽힐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한국기업이라고 한인들에게 특별하게 배려해달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현지 미국인들에게 주듯 동등한 기회와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미국땅에 와서까지 한국인들끼리 역차별을 운운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몽고메리(앨라배마)에서

류종상/애틀랜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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