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위기의 재앙이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월가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금융자본의 꽃’으로 불리며 무한 성장을 이어온 ‘투자은행(IB)’의 신화가 무너지고, 종합 금융그룹으로 거듭난 ‘상업은행(CB)’들이 월가를 새롭게 접수하기 시작했다. 지난주 말 리먼브러더스(4위·이하 IB 순위)와 메릴린치(3위)가 나란히 그린마일(사형집행실로 가는 복도)로 사라지며 미 증시는 9·11테러 당시를 연상케 하는 ‘블랙먼데이’ 패닉에 빠졌다.
베어스턴스의 사형집행관이 CB인 JP모건이었듯이 메릴린치를 집어삼킨 것도 미국 1위 CB 뱅크오브아메리카(BOA)였다.
세계적인 IB 전문기관으로는 골드먼삭스(1위)와 모건스탠리(2위)만이 ‘유이한’ 생존자다. ‘돈을 빌려 돈을 버는’ 피 말리는 곡예사, 그들의 추락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지난 2000년 가을, 체이스맨해튼이 JP모건을 인수했을 때 많은 사람은 IB 부문에 대대적인 인수·합병(M&A)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했는데 8년이 지난 지금 그 예측이 맞아떨어졌다”고 보도했다.케네스 루이스 BOA 회장은 “금융기관이 IB 업무만 전문적으로 수행하고도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시장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이 생존자인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도 파산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인 피해 규모가 작았을 뿐, ‘위기 무풍지대’에 속한 것은 아니다. 최근 양사의 주가는 동반 하락하고 있으며(모건스탠리 최근 1년 새 주가 50% 하락), 반대로 부도위험도가 반영되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는 급등 추세다.
3/4분기 실적 또한 월가 금융기관 중 최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이 조사한 19명의 분석가는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의 3/4분기 순이익이 각각 73%, 44%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한편 IB 신화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월가의 공포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용위기의 여파가 보험 및 저축대부업계 등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억만장자 투자자로 알려진 WL로스앤코의 윌버 로스 회장은 15일 “몇 달 안에 많게는 1000개의 은행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며, ‘여기가 끝이 아님’을 경고했다. 또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이날 미국 최대 저축대부업체인 워싱턴뮤추얼의 신용 등급을 ‘BBB-’에서 투기 등급인 ‘BB-’로 세 단계 하향조정했다.
양춘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