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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두번째 기획전에 출품된 마르커스 코츠(41,영국)의 영상작품. 수사슴 머리를 뒤집어 쓴 코츠의 퍼포먼스는 쇠머리를 전시장에 매달았던 백남준의 초기 작업을 연상 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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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서양을 근대로부터 해방시킨 개혁가=”백남준, 정말 대단해요.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에, 독일의 부퍼탈이란 작은 도시에서 불과 32세의 동양의 한 이름 없는 예술가가 서양의 근대를 초극하는 전시를 열었으니 말이죠.”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자신이 디렉팅한 ‘신화의 전시(EXPosition of mythology): 전자 테크놀로지’를 선보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관장은 1963년 3월, 독일 서부 도시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개최된 백남준의 역사적 첫 개인전을 다각도로 재해석ㆍ재창조했다. 당시 백남준의 ‘음악의 전시(EXPosition of music)-전자텔레비전’은 그 도발적ㆍ전위적 내용이 일단의 전문가들에 의해 ‘비디오아트의 기원’으로 평가받아왔다. 최근 들어 유럽에서 그 전시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하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사상과 예술에 담긴 특이성을 해부하고, 야생의 사고와 미디어와의 관계, 유동적 지성으로서의 예술과 인류학적 상상력의 연관성에 대해 새로운 탐색을 시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가 있었기에 오늘 다양한 예술 실험이 줄 잇는다=1963년 당시, 백남준은 독일 유학(1956~1962)을 정리하는 첫 개인전을 가졌다. 작곡가이기도 했던 백남준은 건축가 롤프 예를링이 소유한 갤러리 1~2층과 지하실, 정원을 죄다 사용하며 창조적인 기획을 펼쳤다. 무려 16개의 테마 아래 당시 예술계에선 감히 상상조차 못했던 독특하고 총체적인 전시를 선보였던 것. 이는 요즘 널리 논의되는 이질적 분야 간 ‘통섭’의 원조이기도 하다. 백남준은 갓 도살된 소머리를 전시장 입구에 걸어놓거나 13대의 텔레비전을 조작해 관객의 참여를 유발시켰고. 4대의 피아노를 반음악적ㆍ반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용해 음악을 공간화하고 소리를 시각적 패턴으로 변형시킨 바 있다. 이에 이번 ‘신화의 전시…’도 16개 테마 아래 구성됐다. 즉 ▷성인(adult)을 위한 유치원 ▷선(禪) 수행을 위한 도구들 등 예술적으로 대단히 엉뚱하면서도 인문학적 호기심을 내포하고 있는 테마를 이리저리 다채롭게 뒤엉키도록 했다. ‘천상의 선배’ 백남준으로부터 초대받은 참여 작가들은 종교ㆍ신화ㆍ예술인류학의 새로운 관점을 드러내는가 하면, 때로는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실험을, 때로는 관객과 작품을 한데 엮어준다. 더러는 높은 벽으로 나뉜 공간을 사운드 작업으로 관통하고 있다. 참여 작가는 백남준을 ‘마음속 스승’으로 받드는 작가 21명. 백남준까지 포함하면 모두 22명이다. 사진ㆍ회화ㆍ영상 설치가 망라된 출품작 중 백남준의 ‘TV를 위한 선(禪)’과 티베트 게세르 부족(‘차마고도’를 통해 소개)을 담는 박종우의 다큐멘터리 영상, 오늘의 실크로드를 찾아가는 박경의 프로젝트 ‘뉴 실크로드’는 북방 유목문화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백남준의 장(場)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또 소리로만 듣던 음악을 시각화하고, 참여예술의 한 형태로 풀어냈던 백남준의 시도를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패러디한 사운드 설치 작업도 다양하게 출품됐다. 이번 기획전은 근대 이후 테크놀로지와 불화를 빚었던 신화적ㆍ인류학적 상상력이 보란 듯이 만나 새로운 ‘예술인류학적 고원’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이는 백남준이 예술의 고루한 틀을 뛰어넘어, 테크놀로지를 사고와 정신의 매체, 생명과의 소통의 매체로 자유롭게, 마치 놀이하듯 구현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테크놀로지-예술-인류학의 지평을 오갔던 예술 천재이자 사상가 백남준은 오늘 후대 작가의 작품 속에 ‘청년의 모습’으로 펄펄 살아 숨 쉬고 있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무료 관람.
이영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