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함께 세계곳곳에서는 많은 좋은 직업들이 사라지고 있다. 안정된 일자리를 잃고 불안한 비정규직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느는가하면 갈수록 늘어나는 일 때문에 좋아하는 일이고 대우도 만족스럽지만 점차 지쳐가고 허탈해하는 부류도 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시간에 더 쫓기고 배고픈 사람은 더 늘어나는 경제성장과 효율성을 강조해온 경제체제가 안고 있는 역설이다. 철학자로 조직행동과 기업경영분야의 전문가인 찰스 핸디는 개인과 조직, 기업, 국가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 역설과 그것이 야기하는 혼란을 어떻게 풀어나가야할 지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 절박한 역설적 상황을 주디스 셰어의 조각 ‘무언’(without words)에 빗대 말한다. 안에사람은 없고 텅 빈 상태로 세워진 레인코트야말로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현실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선 지적 능력, 일, 생산성, 시간, 부, 조직, 나이, 개인, 정의 등 자본주의의 9가지 역설의 영역에 대해 설명해나간다. 가령 부유한 현대사회는 왜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드는가. 그는 노동에 가격을 매기게 되면서 점점 많은 유형의 노동이 공식 경제속으로 편입돼 전문성과 능률은 오르지만 일부 노동은 사라지고 많은 사람들이 단순 작업에 매달리게 된다는 역설이다. 그나마 고용해 주는 일자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못하는 계층이 양산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는 현대사회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이다. 시간은 어떤가. 예전에 비해 수명이 길어지고 능률적인 사회가 되면서 물건을 만들거나 일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크게 줄었다. 당연히 여유로운 시간이 늘어나야 마땅하지만 시간을 돈으로 매김으로써 시간과 속도에 비용을 치르고 있다. 낮은 임금의 비정규직이 늘고 돈을 많이 받는 댓가로 연봉계약자들은 정해진 시간없이 일을 해야하는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간의 불균형, 즉 삶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누군가는 주체할 수 없이 시간이 남아서 걱정이고, 반면에 누군가는 늘 시간에 쫓겨서 하고 싶은 일을 다하지 못한다. 시간은 혼란스러운 상품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나머지 역설의 요소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런 역설과 혼란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저자는 시그모이드, 즉 ‘S자 모양 곡선’을 제시한다. 자연과 인간, 상품의 모든 라이프사이클에 해당하는 S자 곡선에서 저자는 이를 뛰어넘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삶의 모형을 제시한다. 그 비결은 곡선이 하강하기 전에 새로운 두번째 시그모이드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시점은 상승무드를 타고 있을 때다. 조직이나 개인에게 있어 가장 안정적인 시기이지만 달리 말하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발전과정에 새로운 변신을 시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시간과 에너지, 자원 등 동원할 역량이 크고 풍부한 이 때를 놓치면 큰 대가를 치르거나 회복하기 불가능한 상태로 빠질 수 있다는게 저자의 경고다. 이 책의 상당부분은 바로 이 두번째 곡선을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도넛 원리도 경쟁과 효율 중심의 경제체제가 낳은 역설과 혼란을 이해하고 푸는 주요개념이다. 이 도넛은 일반적인 도넛이 아니라 속과 겉이 바뀐 도넛이다. 핵심과 주변부, 의무와 융통성,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이해시키기 위해 저자가 고안한 것으로, 중심만 있고 주변부가 없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도넛이다. 가령 업무 도넛에 핵심만 있다면 기계적인 단순역할담당자만 있고’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기대이상의 성과를 내거나 창의적인 혁신을 낼 수는 없다. 말하자면 핵심영역이 도넛의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주변부 영역이 잠재력을 발휘하거나 변화를 시도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다. 주변부의 존재는 반대입장을 받아들이면서 화해와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 이 균형이이야말로 혼란에 빠지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할수 있는 길이라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는 결국 텅빈 레인코트에 사람의 몸을 넣는 일이다. 머리가 있고 팔이 있는 사람꼴이 되는 것이다. 도넛 원리는 시소의 원리와도 통한다. 대립하는 세력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시소를 효과적으로 움직일 방법을 찾아내면 신나는 놀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과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삶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저저의 통찰이 무릎을 치게 한다.
이윤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