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희망을 주는 일은 따로 있다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올해는…. 1년 내내 헤매다가도 12월만큼은 반짝 살아나곤 했는데 말입니다”
LA 코리아타운에서 가장 성업하는 선물가게로 꼽히는 곳의 주인은 솥뚜껑 위에 올려진 흑돼지 삼겹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데도 젓가락질 대신 연신 소주잔만 비웠다.

“일 끝내고 집에 갈 때면 주머니에 150불 정도는 담아가는 재미에 고단한 줄 몰랐는데 요즘은 하루 50불도 가져가기 힘드네요.”
한인타운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곳으로 첫손가락 꼽혀온 어느 냉면전문집 웨이트리스는 팁 수입이 3분의 1로 줄었다면서 울상이었다.

“송년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숫자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어요. 1년전에 미리 잡아둔 예약을 취소한 동문회도 많습니다”
지난 해 이맘 때만해도 꼬리를 무는 연회 준비 때문에 전화통화할 시간도 아깝다던 한 호텔 지배인은 “신문사는 송년회 안하느냐”고 펑크난 모임으로 비어버린 일정을 채우려 은근히 영업활동을 벌인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들뜨게 마련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웬지 관성적으로 신바람과 흥겨움이 앞서곤 했다. 올해는 그 어린애처럼 들뜨던 관성이든 습성이든 차마 내색이라도 했다가는 딱 욕 먹기 십상이다.

그나마 마련된 모임에 가면 한숨소리만 자욱하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 앉을 대로 가라 앉아 있는데다 LA 한인사회의 젖줄이라는 다운타운 의류업계의 불황도 여간 심각한 게 아니라니 진작부터 예견되긴 했다. 막상 비즈니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책상머리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춥고 고통스럽다.

현실이 어떠하다는 팩트만 알고 있다고 해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누구나 어려움을 안다고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정작 해법은 없다. 아니 당장 해결할 순 없는 문제일지라도 이 추운 겨울이 언제 어느 때쯤 봄바람을 맞을 것인지 예측 가능하기라도 하다면 그나마 견디고 버티는 데 젖 먹던 힘이라도 더 끌어올릴 수 있으련만….

지난 5일 UCLA  앤더슨 연구소는 지역 경제를 낙관하는 전망을 내놓았다. 고용시장 위축과 주 정부의 예산삭감, 할리우드 작가 파업 등 남가주 경제에 압박을 주는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2개월 전부터는 일부 부정적인 지표들이 호전되고 있다는 게 그 근거였다.

LA 한인사회도 남가주 지역경제의 한 축인만큼 권위있는 로컬 대학의 연구소가 내놓은 낙관적인 경제 전망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한인사회의 비즈니스 종사자들이 UCLA 앤더슨 연구소의 경기 전망에 과연 얼마나 기운을 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한인타운 비즈니스는 미국 전역 또는 가주 지역 차원, 다시 말해 메인스트림에서 들이대는 잣대로는 측정하기 힘든 독특한 변수와 요소를 갖고 있다고들 한다. 한국과의 관계, 이민자 사회의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주류사회에서 내놓은 온갖 경제 지표와 분석자료가 나와도 바다 건너 또 다른 나라 일처럼 느껴지는 까닭일게다. 그렇다고 한인사회의 독특한 비즈니스 변수를 연구 분석하는 시스템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고용률같은 거시적인 지표 분석은 그만두더라도 특정 업종의 매출 통계나 소비동향 분석 하나 소박하게나마 나온 적이 없다. 그저 어림잡는 숫자나 객관성 부족한 체험담 수준이 전부일 뿐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 예측을 통해 해법을 찾게 해야한다. 그것은 춥고 힘든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가치 있는 작업이다.커뮤니티에 긍정과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일은 한국 대통령 선거에 쏟는 관심과 열정의 100분의 1만 덜어내도 가능하다.

황덕준/미주판 대표겸 편집인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