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손까지 90명 대가족 ‘장씨네’ 새해 아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머니!”

94세 증조할머니와 11개월 증손까지, 4대 직계가족이 모두 모이면 무려 90여 명에 이른다. 2013년 새해 첫날 아침 이만한 진풍경이 있을까. 가지 많은 나무 바람잘 날 없다지만 좌충우돌 시끌벅적해도 즐겁기만 한 ‘장씨네’를 새해 아침에 찾았다.

“1세대 모두 이민가정이다. 모두 10형제인데 누님과 형님은 이북에 살고 계시고 나머지는 모두 이곳에 살고 있다. 어머님은 올해 94세가 되시고 작년에 세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고모, 고모부님 가족까지 합하면 100명이 훌쩍넘는 대가족이다 (웃음)”

7남 장지용(62. 토랜스) 씨가 ‘장씨네’ 구성원을 소개한다. 고 장석구 선생(2001년 작고)과 장신숙 여사(94) 슬하에 지백, 지란(북한거주), 지송(북한거주), 지상, 지삼, 지희, 지정, 지용, 지님, 지경 10남매. 그리고 이들의 자녀와 또 그 자녀이다. 서로 닮은 듯 다른 듯 아리송하지만 환한 웃음만큼은 장씨네 트레이드 마크가 분명하다. 새해가 되면서 94세가 되셨지만 정정하시다. 40명이 넘는 손주들 얼굴과 이름이 가끔 뒤바뀌기는 하시지만 깔끔하신 성격은 해가 갈수록 더하시다.

“좋지요. 이렇게 모이니 정말 좋아요”

장씨네 가족들은 숫자만큼이나 ‘안동 장씨’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조상 중에는 고려와 조선의 건국공신이 있으며 지난해 9월에는 장씨 형제들의 조부 고 장정용 선생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장씨 형제들은 2세와 3세 아이들이 가족의 뿌리를 알고 이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란다.

“우리 형제들이 생각하던 ‘가족’이라는 단어가 조카들 세대에서는 자기 식구들만으로 한정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다. 이러다 우리가 가고 나면 우리들의 조상은 어떤 분들이었는지 잊히고 가풍이나 전통, 가훈 따위는 집안에서 필요 없이 나뒹굴어 다니는 물건들처럼 되어버린다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족 홈페이지 ‘장씨네 가족 이야기’(www.familyofchangs.com)는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됐다. 가족의 대소사, 개개인의 근황,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고 있는 장씨네 홈페이지는 가족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10만 명이 넘는 손님들이 다녀갔을 정도로 입소문 난 곳이다. 한글을 모르는 세대들을 어떻게 끌어들일지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긴 하지만 조카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가족들의 소식을 전해 듣고 공지사항에 따라 행사에 참여한다. 올 새해맞이 행사는 일찌감치 공지됐었다.

<1월 1일 어머니(할머니)께서는 지용삼촌네 계실 예정. 세배 드릴 사람은 9시부터 1시까지, 오후 2시에는 할아버지 묘지에서 가족예배>

바쁜 세상 바쁜 세대들을 위해 최대한 ‘간단히, 부담 없게, 쿨하게’가 장씨네 가족 행사의 원칙이다.

과연 ‘칼 같은’ 공지 덕분이었는지 행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올해는 장씨네 며느리들 명절 증후군 방지를 위해 ‘떡국은 알아서 먹기’도 공지된 터였다. 오전 4시간에 걸쳐 세배를 마치고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그린힐’ 공원묘지로 향한다. 미처 아침에 오지 못한 장씨네 멤버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언제봐도 반가운 피붙이들이다.

“물론 수시로 작은 문제가 생기고 때로는 갈등하고 반목하기도 하지만 우리 장씨네만의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슬기롭게 잘 대처해 나가고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대가족이 잡음 없이 형제간에 우애를 지키며 사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우애는 결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서로 믿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희생해야만 이루어지더라. 대가를 치러야만 생기는 값비싼 열매다.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살아생전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찬송가를 부르는 동안 할머니의 눈시울이 젖어든다. 이어서 최근 몸이 좋지 않은 조카의 건강을 걱정하며 가족 모두가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한다. 매서운 공원묘지의 바람도 잦아드는 듯하다. 예배를 마쳤지만, 모두가 쉽게 발을 돌리지 못한다.

“다음 주 토요일 원택이 돌잔치 알고 있지?” “벌써 돌이구나!”

장씨네 가족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 가족이 보고 싶다.

하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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