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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늙은이에게 뭐 배울것이 있다고… 뭐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미국은 아직도 가능성 있는 나라다. 내 나이 마흔에 그랬듯이”
오렌지카운티 최초의 한인 연방정부 공무원이자 OC한국학교 교장, 최초의 영문 한국어 교재 집필자이며 현 APAC(All People Access Community Services . 지체장애자 교육센터) 소장 박남경 옹(미국명 그레고리 박)이 우리들에게 주는 새해 덕담이다.
그의 미국이름이 추억의 헐리우드 스타를 연상시킨다 했더니 ‘바로 그걸 노리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왕이면 미국사람들이 한번 들으면 나를 기억하는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레고리 펙과 이름이 같다고 하면 그래도 얼굴은 내가 더 낫다고 말했다. 어김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1973년. 미국으로 이민 온 첫해 연방정부 공무원 채용 인터뷰에서도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롭게 같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는 즉시 관리자급으로 채용됐다. 파격적인 인사였다.
“연방정부의 퍼시픽 아시안 아메리칸 센터라고 이민자들에게 영어교육을 시키고 직업을 알선하고 훈련하는 부서에서 일했다. 7,80년대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오는 이민자들이 폭발적으로 유입되었고 정부차원에서도 이를 지원했다. 당시 OC에 정착한 한인들이라면 10명중 9명은 나를 만나셨을 것이다”
관리자급 공무원으로 비교적 안정된 직업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의 원어민 수준의 영어덕분이었는데 여기에도 기막힌 사연이 있다.
“6.26 때 나는 고2였다. 남한이 거의 북한군에게 점령됐을 때 미군이 들어왔다. 전쟁 통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나. 그때 전국에서 300명 정도의 영어특기자들을 모아 미군 통역자를 뽑았다. 나는 학교대표로 거기 갔는데 최종 15명에 뽑혔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일이 그렇게 됐다(웃음)”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미군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갔고 부대와 함께 압록강까지 올라갔다. 발포명령이 내려지고 포로가 잡히는 현장에서 그는 통역병으로 일하며 오히려 본토영어를 익혔다.
“인생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것이다. 그때 배운 영어로 내가 연방정부 공무원이 될 지 누가 알았겠나. 또 그 영어로 여러사람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보람있었다”
문화차이로 문제가 발생되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박소장이 달려갔다. 어린 미국아이가 귀엽다고 ‘뭘’ 좀 만져보자 했다가 경찰에 체포되고 학교선생님께 끼고있던 금반지를 선물한 학부모는 법정에 섰다. 병원에서는 몽고반점을 모르는 의사들이 아동학대라며 호들갑을 떨어대던 기막힌 시절이었다. 당시 OC 의 한인관련 법정통역은 모두가 그의 몫이었다.
초대 한인회의 요청으로 맡게 된 OC한국학교 교장직은 벌써 34년째다. 한국어 배우기가 쉽지 않은 2세들을 위해 그가 직접 집필한 한영 한국어 학습 교재는 이후 전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한국어 교재로 채택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다.
“인생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것이다. 그때 배운 영어로 내가 연방정부 공무원이 될 지 누가 알았겠나. 또 그 영어로 여러사람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보람있었다”
문화차이로 문제가 발생되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박소장이 달려갔다. 어린 미국아이가 귀엽다고 ‘뭘’ 좀 만져보자 했다가 경찰에 체포되고 학교선생님께 끼고있던 금반지를 선물한 학부모는 법정에 섰다. 병원에서는 몽고반점을 모르는 의사들이 아동학대라며 호들갑을 떨어대던 기막힌 시절이었다. 당시 OC 의 한인관련 법정통역은 모두가 그의 몫이었다.
초대 한인회의 요청으로 맡게 된 OC한국학교 교장직은 벌써 34년째다. 한국어 배우기가 쉽지 않은 2세들을 위해 그가 직접 집필한 한영 한국어 학습 교재는 이후 전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한국어 교재로 채택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는 여전히 2세 한글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언어는 민족혼이다. 언어를 잃으면 혼을 잃게 되고 혼을 잃으면 민족을 잃게 된다”고 강조하며 아이들의 한글교육을 독려하고 있다.
박남경 옹은 또한 지난 2000년부터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지원하는APAC의 남부오피스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APAC는 지체장애인의 경제적,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고 이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과 함께 직업알선을 해주는 비영리단체다.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이민자들을 위해 일한 것이 제1의 인생이었다면 제2의 인생은 소외받는 장애인 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아직 한인들이 센터를 잘 모르고 지체장애인에 대한 의식부족으로 좋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만 21세가 넘은 발달장애, 지적장애인들은 누구나 APAC에 교육신청을 할 수 있다. 교육생들에게는 특수교육 전문교사의 풀타임 케어와 함께 재활훈련, 직업교육이 무상으로 지원된다.
박남경 옹은 또한 지난 2000년부터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지원하는APAC의 남부오피스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APAC는 지체장애인의 경제적,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고 이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과 함께 직업알선을 해주는 비영리단체다.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이민자들을 위해 일한 것이 제1의 인생이었다면 제2의 인생은 소외받는 장애인 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아직 한인들이 센터를 잘 모르고 지체장애인에 대한 의식부족으로 좋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만 21세가 넘은 발달장애, 지적장애인들은 누구나 APAC에 교육신청을 할 수 있다. 교육생들에게는 특수교육 전문교사의 풀타임 케어와 함께 재활훈련, 직업교육이 무상으로 지원된다.
교사들이 직접 라이드까지 책임지고 있어 장애인의 가족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APAC문의 (714) 534-0598) “우리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젊은 사람들이 어깨가 쳐져 있으면 되나. 툭툭 털고 일어나라. 기회는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다. 미국까지 와서 사는데 더 힘내서 잘 살아야지. 그게 한국인이지!”
하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