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사격계 돌풍일으킨 한인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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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김군이 타겟을 향해 조준하고 있다.

새벽 4시를 조금 넘긴 시간.

LA동부의 한 사격연습장에 앳된 아이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타겟을 노려보고 있다. 싸이의 신곡 ‘행오버’가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쿵쾅거리고 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꼭두새벽부터 요란한 음악을 틀어놓고 3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사격훈련 중인 10대들. 바로 한인 청소년 사격팀 ‘브릿지 주니어’ 선수들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내셔널 사격대회가 코 앞이다. 경기가 열리는 뉴저지 시각에 맞춰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새벽시간에 싸이의 음악을 틀어놓고 훈련하고 있다”

지난 2010년 김인현 코치가 설립한 ‘브릿지 주니어 사격팀’은 4년 만에 미국 사격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설립 이듬해부터 전국대회를 휩쓸기 시작하더니 현재 미국 청소년 국가대표만 6명이다. 김인현 코치 또한 2012년부터 미국 국가대표 부코치로 초빙됐다.

그 뿐인가. 올해 고교를 졸업한 4명의 선수들은 미 공군사관학교(에어포스 아카데미)를 비롯해 해양경찰대학(코스트 가드 아카데미) 등 명문대에 진학했다.

백인 상류층의 스포츠로 여겨지던 사격연맹의 텃새에도 불구하고 ‘미운오리새끼’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기까지 김인현코치와 아이들은 “우리들 이야기는 영화 몇 편은 족히 만들 만큼 나올 것”이라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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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동부 라 푸엔트 시에 위치한 청소년 사격팀 ‘브릿지 주니어 슈팅클럽’에서 학생들이 훈련하고 있다.

사격계의 외인구단 ‘브릿지 주니어 사격팀’

4년 전 청소년 사격팀을 만든다는 김인현 코치를 보고 대부분의 한인 부모들은 못마땅해 했다. 가뜩이나 총기사고가 많은 미국에서 왜 하필 ‘총’이냐는 것. 복싱을 하는 선수를 보고 왜 싸움질이냐, 펜싱을 하는 선수를 보고 왜 칼싸움이냐 하는 것과 같았다. 사격을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도 있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13살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사격을 했다. 국가대표 선수가 꿈이었지만 이루지 못하고 미국으로 와서 돈 벌기에 바빴다. 직접 사격을 가르친 딸이 ‘공사’에 합격하는 것을 보고 한인학생들로 구성된 사격 팀들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람 키우는 일. 김코치는 감언이설로 부모들을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 자신의 열정을 이해하고 결정해준 부모들과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레슨비 외에 총 구입, 사격연습장 대여 및 대회 참가비 등은 자비를 털어 넣었다. 1년 만에 집도 팔았다.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제니스 최(18·LA)양는 4년 전에 만난 김코치의 첫 제자다. 고집도 세서 엄격한 김코치에게 많이 혼이 났지만 지금은 눈빛만 봐도 통하는 아빠와 딸 같은 사이가 됐다. 내셔널 사격대회 상위권 성적과 미 청소년 국가대표 경력 등이 인정돼 미 공군사관학교와 해양경찰대학에 모두 합격, 결국 ‘공사’를 선택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유일한 아시안 합격생이다. 제니스의 꿈은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다.

자신감이 없어 항상 땅을 보고 걷던 신디 정(17·다이아몬드 바)양은 사격 입문 1년 만에 미 주니어 챔피언이 됐다. 22구경 스포츠 피스톨 금메달 유망주로 올해 뉴욕의 명문 미대 프랫 인스티튜트에 합격했다.

해양경찰대학에 합격한 헬렌 오(17·롤랜하이츠)양과 UC어바인에 합격한 브라이언 김(18·LA)군도 모두 사격입문 2,3년 만에 미 주니어 랭킹 3위권에 든 사격유망주들이다. 이들 역시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꿈에 부푼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이밖에도 12세 때 미국 주니어 국가대표팀에 최연소로 발탁된 사격신동 토니 정(14)군, 사격 입문 8개월 만에 PPP 챔피언십에서 공기권총 부문 우승을 차지하며 대표팀에 뽑힌 조슈아 유(16)는 미국 사격계의 기대주가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을 위한 투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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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니어 국가대표 선수’ ‘미국 국가대표 부 코치’ ‘올림픽 유망주’라는 멋진 타이틀과는 달리 이들의 훈련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김코치는 여전히 전지훈련이나 내셔널 대회 참여를 위해 자신의 총을 팔아가며 연습실 소파에서 3년 째 쪽잠을 자고 있다. 가장 저렴한 야외 사격장을 찾아 나무에 타겟을 직접 그려가며 훈련을 한다. 주위에서는 학원처럼 운영해 보라고 하지만 대학입시를 위한 보여주기식 운동은 하지 않는다는 철학이다. 때문에 문의를 해오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도 인내심과 노력을 먼저 요구한다.

재능 있는 선수들에게 보다 좋은 훈련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미국 사격팀처럼 스폰서를 구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상류사회 백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사격연맹에서 누구도 한인 사격팀의 스폰서가 되어줄 이는 없다.

“대회에서 금,은,동메달을 휩쓰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축하인사는 해주지만 미묘한 무언가가 있다. 선수들끼리는 너희는 도대체 무슨 훈련을 하느냐며 수군거린다고 한다. 우리끼리는 미운오리새끼라고 한다(웃음)”

김인현 코치는 여러 가지로 불안하고 집중하기 어려운 청소년 시기에 사격만큼 심신을 단련하기 좋은 운동은 없다고 말한다. 게임이나 힙합음악에는 단 몇 분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이 불과 두 달 만에 3시간을 부동자세로 서서 집중하는 것을 보면 김코치 자신도 놀랍다는 것이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는 미 공군사관학교로 떠나는 제니스 최 양에게 사격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을 물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은 오로지 내가 결정한다. 지독한 슬럼프 끝에 결국 나는 다시 사격을 선택했다. 사격을 통해 얻은 것은 내가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하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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