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한국기업 ‘엔저’ 비명 “1000원 마지노선 깨져…사업 철수도 고려”

-무역협회 도쿄지부 駐日 한국기업 56곳 설문조사
-80.3% “엔저로 영업 악영향”…제조ㆍ무역업 피해 더 커
-채산성 악화로 가격 인상 필요하지만 불가능…거래처 갈등도↑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일본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계속되는 엔화 약세(엔저)로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기업 활동이 가능한 마지노선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인데 현재 환율은 955원까지 추락한 상태다. 엔저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단가 인상을 시도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거래처가 수용 불가 방침을 보이면서 갈등만 커지는 상황이다. 주일 한국기업 10곳 중 7곳은 엔저 현상이 지속될 경우 대일 비즈니스 환경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사업 철수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가 삼성, LG, 포스코 등 일본 주재 한국 기업 56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0.3%가 엔화 약세로 영업에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응답기업의 44.6%는 엔저의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특히 제조ㆍ무역업체는 가격 경쟁력 약화와 채산성 악화로 다른 산업군에 비해 피해 체감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의 66%(31개)는 영업유지를 위해 필요한 이른바 ‘마지노선 환율’은 100엔 당 1000~1100원 이라고 답했다. 최소 1000원 이상의 환율이 유지돼야 현지에서 기업 활동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100엔당 원화 환율이 최근 955원까지 떨어졌고 내년도 전망도 100엔당 949원 수준이라 대일(對日) 비즈니스 축소가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응답 기업의 70%도 엔저 지속 시 주일 한국기업의 비즈니스 환경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들은 엔저 대응 방안으로 단가 인상(39.2%), 사업 축소(19.6%), 결제통화변경(12.5%), 환율변동보험 확대(3.5%) 등을 고려하고 있지만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단가 인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일 한국기업 대다수가 단가 인상을 시도했지만 거래처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아 거래선 갈등 및 이탈 문제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응답기업의 약 66.1%(37곳)는 일본 거래처로부터 기존의 단가 유지를 요청받았다. 거래 단가를 인상한 곳은 전체의 8.9%(5곳)에 불과했다.

한국 여행상품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감소함에 따라 관광 관련 일부 업체는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중 사업 철수를 고려하는 곳은 3곳으로 나타났다.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답한 기업도 전체 응답 기업의 20% 수준으로 드러났다.

주일 한국 기업은 정부 차원의 외환시장 모니터링 강화와 강력한 시장 개입을 희망했다.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양국 교역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관계 개선을 통한 제2의 한류 붐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대일 수출용 원재료에 대한 보조금 지급, 대일 수출기업에 대한 대출 금리 인하, 수출 장려금 지원 등을 건의했다.

김은영 무협 도쿄지부장은 “제조업과 무역업뿐만 아니라 전 분야에 엔저로 인한 피해가 확대될 전망”이라며 “엔저와 관련된 애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주일대사관과 함께 엔저대책회의 등을 통해 애로 해소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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