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오·에피톤·짙은이 등 참여
600여통 사연 중 10개 골라 작업
사연 선정된 팬은 공동작사가 등재
#딱 그 사람과 만났던 시간 만큼 혼자서 아팠습니다. 이제서야 혼자가 익숙해졌고, 그 사람이 밉지도, 그립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나는 쉽게 정의내리지 못했어요.
#나 지금 그대와 안녕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슬프고 힘들줄만 알았던 이 길이 이렇게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대와. 그대와 나의 인연을 믿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혹여나 걸림돌이 될까 서로의 카톡 사진만 보고 SNS는 이미 친구가 아니지만 이름을 검색해보고 모르고 누른 것 처럼 보이스톡을 눌러볼까도 고민하고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보지 않을까 괜스레 집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한,두시간씩 있곤 합니다
사랑은 어느 작가의 말처럼 헤어지거나 결혼하거나 둘 중 하나일까. 파스텔뮤직의 브랜드가 된 컨셉 컴필레이션 앨범 ‘사랑의 단상’은 사랑에 관한 다양한 시선을 보여준다. 다섯번째 앨범 2014 Chapter 5에 담을 ‘사랑의 단상’사연 공모가 마감됐다. 가사로 실을 사연을 대중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두달간 ‘사랑의 단상’ 에 모인 사연은 600여통. 마음을 다잡듯 꼭꼭 눌러쓴 단정한 손글씨 엽서 편지 등 책상에 가득 쌓인 편지를 10팀의 뮤지션들은 읽어나가면서 저도 모르게 눈을 붉혔다. 사연 속에서 사랑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여정은 찬란하고 아름다웠지만 헤어짐은 한결같이 짙고 고통스러웠다. 캐스커의 이준오, 에피톤 프로젝트, 짙은이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이번 ‘사랑의 단상’앨범 챕터5는 음악팬들과 함께 만드는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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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요계의 테마는‘ 사랑’이다. 뜨거웠던 여름, 꿀 같았던 사랑은 식어 버석거리는 가을과 함께 헤어짐의 아픔을 노래한 곡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음악팬들도 사랑 때문에 많이 아파하며 사랑의 얘기를 전해왔다. |
▶‘사랑의 단상’ 공모 사연을 보니=도착한 사연들은 뮤지션들이 모두 읽어보고 저마다 마음에 드는 사연을 골라 곡 작업을 벌인다. 사연은 제주에 설치된 오프라인 사서함을 통해서도 속속 도착했다. 지난 10~12일엔 대림미술관 ‘트로이카’ 전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사연을 받기도 했다. 이번 작업의 기획을 맡은 뮤지션 짙은(34)은 지난 10일 저녁, 대림미술관 트로이카 전시, 고별 파티에서 ‘취중토크’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며 관람객들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날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한 짙은을 만나 이 특별한 컴필레이션 음반, ‘사랑의 단상’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짙은은 ‘사랑의 단상’ 챕터2에 곡 ‘달‘로 참여했으며 이번 앨범에는 프로듀서를 겸한다. “2008년부터 기획된 거다 보니 어느새 초창기 작업했던 저희가 중견이 됐더라고요. 신인 뮤지션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뭘까 고민하다가 후배들을 위해 직접 앨범을 기획해보기로 했어요. 전체 컨셉과 진행 방식을 논의하고 사연 공모를 받기로 했지요. 이제 뮤지션들의 작업만 남았네요.”
그에 따르면, 보내온 사랑의 사연은 실패담이 많았다. 타이밍을 놓쳐 결국 갈라서게 된 얘기, 사랑할 때는 사랑인지 모르다가 헤어지고 나서야 사랑이었다는 후회담, 짝사랑, 사랑해선 안될 사랑, 동성애도 적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사랑, 특히 아버지에 대한 마음도 이어졌다.
그렇다면 가사로 적당한 사랑의 소재는 어떤 걸까.
“저는 단어의 낭만성, 미학적인 걸 좋아해요. 드라마 같은 주제들도 다루기 좋은 소재죠.”
짙은 역시 여러 번의 사랑을 했고, 헤어지고 다시 사랑을 찾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을 이제 알아가는 것 같아요. 과거에 나는 사랑할려고 한 게 아니었구나, 단지 여자를 만나고 싶어했고 인생을 즐기고 싶었던 거였구나, 사랑은 따로 있구나 하는 것 말예요.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사랑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진지하고 치열하게…”
▶짙은 “사랑도 치열하게 찾아야”=선정된 사연은 곡으로 만들어져 10월 중 두 장의 디지털 싱글로 먼저 나오고, 12월에 정식 앨범으로 발매된다. 사연에 뽑힌 이들은 앨범에 공동 작사가로 올라간다. 또 12월25일 대림미술관 크리스마스 파티에 사연전시회도 기획중이다.
짙은은 “뮤지션이 저마다 고른 사연이 겹칠 경우에도 조율하지 않기로 했다”며, “그것도 일종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고, 작업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랑의 단상’은 2008년 9월 언어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책 ‘사랑의 단상’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프로젝트 앨범. 제1장(Chapter1)은 ‘With or without you’을 부제로 신예 뮤지션 에피톤 프로젝트, 더멜로디, 캐스커, 박준혁, 파니핑크, 일본 뮤지션 램프, 아이슬란드의 가수 올라퍼 아르날즈 등이 참여해 사랑의 담론을 완성했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이 앨범에서 타이틀곡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를 비롯, ’바이올렛‘’희망고문‘등으로 톡톡이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듬해 1월 6개월만에 나온 제2장은 센티멘탈 시너리, 에피톤 프로젝트, 짙은, 러블리벗, 루싸이트 토끼, 한희정이 곡을 만들었다. 사실 이 컨셉 앨범은 두 장의 앨범을 내고 3회 공연으로 기획, 마무리 되는 듯했다. 그러던게 2년 후 봄과 함께 다시 사랑은 돌아왔다. 제3장의 제목은 ‘Follow you, Follow me’. 이 앨범에는 러블리벗, 이진우, 희영, 헤르쯔 아날로그, 옆집 남자, 융진이 사랑의 노래를 한 곡씩 보탰다. 제4장은 2013년에 나왔다. ‘프로포즈’를 테마로 헤르쯔 아날로그와 더 페이퍼스 러블리벗, 알레그로, 비스윗 등 뮤지션과 최소라, 이성경, 장기용, 박형섭 등 톱 모델과의 이색 콜라보레이션으로 화제가 됐다. 오로지 프로포즈만을 주제로 단일 앨범이 발매된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 10곡의 세레나데가 가을을 무드있게 채웠다.
컴필레이션 음반 ’사랑의 단상‘은 사랑의 담론을 펼치는 새로운 틀을 보여줄 뿐 만아니라 잠재력있는 신인뮤지션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번 제 5장에는 짙은, 에피톤 프로젝트, 캐스커 외에 한희정, 센티멘털 시너리, 파니 핑크, 아웃오브 오피스, 옆집남자 등이 참여해 저마다의 빛깔로 사랑을 그려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