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 안전 불감증 ‘무한도전의 경고’

#1 “스타 이모, 삼촌들이 조카를 데리고 1박2일 여행을 떠나는 ‘이모, 삼촌 어디가’ 어때요?”(제영재 PD)

#2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동료들이 다 죽었네요. 하지만 한 명 한 명 떨어질 때마다 많이 즐거우셨죠? 이게 바로 리얼 버라이어티의 미래입니다.”(80층 건물 꼭대기에서 줄다리기 촬영 후 박명수)

MBC ‘무한도전’의 지난 18일 방송분인 ‘만약에’ 특집 2탄 ‘박명수가 국민MC라면’ 상황극의 두 장면이다. ‘무한도전’은 이날 방송분을 통해 ‘풍자의 달인’이었던 장기를 살려 지상파 예능가의 ‘불편한 현실’을 꼬집었다.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예능가에는 빈곤한 창의력에 ‘베끼기 예능’이 난무하는 표절불감증, 나날이 극한의 도전과 체험을 강요하는 안전불감증이 대두됐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도 넘은 ‘베끼기’에 지상파 예능은 ‘복사파 예능’이라는 비아냥이 줄을 이었다. 

[사진제공=MBC]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할배’의 성별만 바꾼 KBS2 ‘엄마가 있는 풍경 마마도’가 신호탄이었다. 예능 한 편이 히트하기 시작하자 너나 없이 ‘트렌드 따라잡기’에 나섰다. 아빠와 아이들이 1박2일간 여행을 떠나는 ‘아빠 어디가’(MBC)의 인기에 ‘육아예능(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오마이베이비)’이 줄줄이 나왔다.

성인판 ‘아빠 어디가’이자 ‘1박2일’의 가족 버전으로 불리는 예능은 MBC ‘4남1녀’였다. 스튜디오 예능인 김구라를 비롯해 ‘예능 초짜’인 김민종 서장훈 김재원 이하늬가 시골의 노부모를 찾아 여행을 떠나 한 가족이 된다는 프로그램으로, 결코 낯설지 않은 포맷이었다.

대기 중인 예능도 익숙하다. KBS에서 31일 방송을 앞둔 ‘음악쇼’는 ‘음악다방’이라는 코너를 통해 시청자와 직접 만나 커피 한 잔을 나누며 그들의 사연을 듣고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지방을 돌며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과 만나 음악을 들려주는 케이블채널 tvN ‘팔도 방랑밴드’와 닮아 있다. 공교롭게도 두 프로그램엔 가수 윤종신이 출연한다.

가혹해지는 예능의 세계도 ‘점입가경’이다. 군대를 시작으로 소방관(SBS 심장이 뛴다), 경찰관(KBS2 근무중 이상무), 노비(tvN 시간탐험대 렛츠고) 체험이 줄을 이었다. 다른 삶이나 세계를 살아보고, 직업을 체험하는 ‘체험 예능’이 인기를 얻을수록 방송가는 더 세고 위험한 도전을 찾았다가 사단이 났다. 지난해 개그맨 이봉원은 촬영 중 안와골절(MBC 스타 다이빙쇼 스플래시)을 입었고, 배우 이연두는 약초 밀반출 혐의로 브라질 경찰에 체포돼 억류(KBS2 리얼체험 세상을 품다)됐다. 방송인 구지성은 저체온증(SBS 월드챌린지 우리가 간다의 터프 머더 대회 체험)으로 정신을 잃었다.

위험천만한 체험 예능에 대해서 방송가도 책임론을 강조한다.

한 지상파 예능국 관계자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조작을 피하며 생생한 도전을 강행하다 보면 부상 사례는 늘 따라온다. 제작진은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스스로 강약조절을 하며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자성했다.

하지만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은 표절불감증보다는 딜레마였다. 다양성은 저해해도, 안정성은 담보한다. 예능국 PD들은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나오지 않은 예능 소재는 하나도 없다. 이미 수백번 기획해온 아이템이 때가 돼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박명수의 꾸짖음은 여기에서 나왔다. “PD면 사명감이 있어야지. 남이 잘된다고 가져다가 베끼면…이런 식이면 PD 하지마. 사표 써.”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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