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행방 쫓는 도사는 실존인물
폐 끼치지 말자는 생각에 진중한 연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소신’을 다룬…
이번 영화는 덜어내는 작업이었죠”
불과 몇 개월 새, 유해진(45)은 옆집 삼촌처럼 대중과 가까워졌다. 극장을 자주 찾지 않는 초등학생, 노인들도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름을 한자 뜻 그대로 풀어 쓴 ‘참바다’라는 친근한 별명도 생겼다. 예능 프로그램(tvN ‘삼시세끼-어촌편’) 출연이 가져다 준 변화다. 마냥 웃기려고 애쓴 건 아니었다. 그저 후배 앞에서도 권위를 내세우는 법이 없었고, ‘차줌마’ 차승원의 잔소리에 못 이긴 척 꼬리를 내렸다. 밖에선 ‘가장’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지고 최선을 다해 고기를 낚았다. 사람들은 ‘배우’ 유해진이 아닌, 소탈하고 선량한 ‘인간’ 유해진에 반했다.
본업으로 돌아온 유해진은, 관객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곽경택 감독의 신작 ‘극비수사’(제작 (주)제이콘 컴퍼니ㆍ공동제작 (주)영화사 신세계)의 주역을 맡았다. 저잣거리를 휘어잡는 익살스러운 광대(‘왕의 남자’)도, 날치떼를 온몸으로 표현하던 산적(‘해적: 바다로 간 산적’)도 아니다. 그늘진 얼굴로 유괴된 아이의 행방을 쫓는 ‘도사’역이다. 1978년 부산에서 실제로 있었던 유괴 사건을 다뤘고, 유해진이 연기한 김중산 도사도 실존 인물이다. 그렇다보니 유해진은 ‘실존 인물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 진중하게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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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과장없이 사실적인 연기를 펼치게 된 유해진은 “사람 중심으로 담백하게 그려진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에 끌렸다”고 말한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 |
“시사회에서 어떤 관객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웃기고 싶지 않았냐고’.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이번 영화는 덜어내는 작업이었어요. 기름기를 다 걷어내고 싶었죠.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다 보니 ‘잘 그려졌을까’, ‘영화화 되면서 불편한 건 없으셨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김중산 도사님이 영화를 보시고 ‘너무 잘 그려줘서 고맙다’고 하셨죠. 그 분의 따님이 손편지에 김이랑 참외까지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유해진은 그의 말대로 과장없이 사실적인 연기를 펼친다. 시나리오가 담백하게 흘러가다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극비수사’는 곽경택 감독의 영화가 맞나 고개를 갸웃이게 되는 작품이다. 곽 감독은 2001년 흥행 신드롬을 일으킨 ‘친구’를 비롯해, ‘챔피언’, ‘똥개’, ‘사랑’, ‘친구2’ 등 소위 ‘남자 냄새’ 물씬 나는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렸다. 그가 이번엔 사나이의 의리나 순애보 사랑이 아닌, 실적에 눈 먼 인간 군상 속에서 소신을 지킨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한 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에 끌렸어요. 사람 중심의 영화고, 담백하게 그려진 점이 좋았죠. 요즘 세상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라는 소신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따르는 데 급급한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자기 공(功)보다 아이를 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 부분이 좋았던 거죠.”
앞서 곽경택 감독은 “소신(所信) 있는 사람들이 결국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극 중 공길용 형사(김윤석 분)는 극비로 수사를 진행해야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모든 도사들이 ‘아이는 죽었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때, 김중산 도사 만이 ‘아이는 살아 있다’고 확신한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자신의 ‘감흥’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김 도사에겐 ‘소신’인 것이다.
그렇다면 배우 유해진의 ‘소신’은 뭘까.
“어렸을 때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마음으로 연기를 하진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이렇게 좋아하는 연기인데 나중에 할 게 없어서 연기하는 배우가 되어 있다면 그 땐 그만둬야지 생각했었죠. 그 마음을 돌이켜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갖고 있던 생각만큼 열심히 하고 있는 지, 아니면 정말 배운 게 도둑질이라 하고 있는 지… 후자가 안 되게 노력하겠다는 생각은 하면서 살아요.”
배우 아닌 ‘자연인’ 유해진의 작은 소신 하나는 매일 산에 오르는 것이다. ‘삼시세끼’에서도 매일같이 산에 오르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 당일에도 아침부터 산에 다녀온 참이었다. 등산하기 좋다는 이유로 구기동으로 이사까지 했다. ‘전날 술이 떡이 돼도’ 산에 오르고, 심지어 지방 촬영을 가서도 숙소 근처에 산이 있는 지부터 확인한다. 그에게 산에 오르는 것은 단순히 운동의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잡는 하나의 훈련이다. 하루에 그것 하나 만이라도 의미있는 걸 하겠다, 나를 흘러가게 두진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사실 지금 너무 좋아요. 저 스스로도 항상 ‘복 받은 놈’이라고 얘기하고 다녀요. 물론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기 전의 삶도 좋았어요. 일적으론 만족스러운데, 개인적인 삶에선 여러가지를 생각할 시점이에요. ‘어떻게 살고 있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짚어보고 갈 때라고 생각해요. 생각의 연속이고 답은 없지만, 스스로에겐 의미있는 질문 아닐까요? 돌이켜 봤을 때 ‘후지게 살지는 않았구나’ 싶게끔, 나 자신도, 주변도 살피면서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