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정조의 고통과 절제..인내에서 풍기는 카리스마

배우 현빈이 군 제대 후 처음으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 ‘역린’을 통해서다. 이 작품은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하츠’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드라마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조재현, 정재영, 박성웅, 김성령, 한지민, 정은채 등의 멀티캐스팅으로 관객들의 관람 욕구를 자극했다.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관상’에 버금가는 화려한 캐스팅이다.

이들 중 ‘역린’의 이야기를 이끈 현빈은 극중 사도세자의 아들로 평생 암살 위험 속에 살아 온 조선의 22대왕 정조 역을 맡았다. 역사는 정조를 왕권 강화와 인재 육성, 신분 차별 철폐에 앞장서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개혁 군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첫 사극에 도전한 현빈은 ‘역린’을 통해 기존의 정조와는 다른 정조의 모습을 시도했다. 고통 속에 절제하며 이를 악무는 그의 모습은 극의 몰입도를 한층 높였다. 야위고 미소 한 줌 없는 정조의 얼굴은 그가 얼마나 고통 속에 살아왔는지 짐작케 한다. 군 복역 기간 동안 녹슬지 않는 현빈의 열연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달리 말하면 인물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면, 작품을 온전하게 즐기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와 더불어 송영창과 박성웅을 비롯한 조재현 등은 소소한 웃음으로 무겁게 짓누르는 작품의 무게에 쉴 틈을 마련해 준다.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역린’에서 손꼽히는 부분 중 하나는 스타일과 공간이다. 영화 전반을 감싸고 있는 무겁고도 음습한 기운의 궁궐이나 정조가 침전처럼 머물렀던 존현각, 궁의 의복을 만들고 관리하는 세답방 등을 비롯해 흑백으로 대비되는 의상은 캐릭터의 입체감을 살리는 데 손색이 없다. 고심한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135분의 러닝타임 안에서 언뜻 마블(MABEL)사(社)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작품 초반의 강한 임팩트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이어지는 스토리 전개, 결말을 앞둔 30여분의 다이내믹한 구성은 마치 그것과 닮은 모습이다. 하지만 치열하다 못해 처절한 궁중 암투에서 풍기는 진한 남자 향기는 마블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역린’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각자가 처한 입장이 다른 상태에서 부딪치게 되는 하루로 정적인 표면과 역동적인 속내 모두를 여실하게 다루고 있다.

‘정성을 다하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역린’은 오는 4월 30일 관객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조정원 이슈팀기자 /chojw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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