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고, 가난 때문에 서러웠던 소년(이서진 분ㆍ강동석)은 ‘개천의 용’이었다. 가진 건 없지만, 특출난 학업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단 번에 상행선 열차를 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사법고시. 소년도 그 능력 하나로 검사가 됐다. 15년 만의 ‘금의환향’이었지만, 고향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드라마는 이 흔한 스토리 안에서 천천히 큰 울림을 준다.
‘참 좋은 시절’은 복수와 멜로가 큰 줄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잊고 사는 가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어른들이 하나씩 쌓아올린 이기심은 어린 학생들을 내버리고 사라졌다. 작은 부조리가 모여 커다란 불합리를 이루고, 그로 인해 잉태된 재앙 앞에 분노와 절망만 커져가는 때다. 누구 하나 그 자리를 지킨 사람이 없었기에 사고는 참사가 될 때, 이 드라마는 시간이 멈춰버린 지방 소도시 사람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사람의 가치’를 말한다.
드라마의 처음으로 거슬러 가보면, 사실 ‘개천의 용’이 된 소년에게 멈춰버린 고향은 깊은 우물처럼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그토록 괴롭혔던 가난은 지방 소도시라는 공간 안에 묻혀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의 변치 않는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윤여정 분, 장소심)는 아직도 부잣집 딸 해원(김희선 분)의 식모였던 것처럼 허리를 숙이고, 해원의 어머니는 장소심과 가족을 하대하기 일쑤다. 검사가 돼 돌아온 소년은 이 마을의 작은 불합리에 숨이 막힌다. 형의 아들부터 동생의 아이들까지 어른보다 어른스럽고 영민하기 그지없지만, 그 아이들보다 더 어린시절에 머무른 누나 동옥(김지호 분)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도 다 자란 소년에겐 변치 않는 아픔이고 부채다.
하지만 어른이 된 소년이 어린시절의 정서를 찾아가는 것 역시 가족이 그 자리에 변함없이 머물렀기에 가능하다.
천하의 호색한인 남편 때문에 여러 자식 거두고 사는 것도 모자라 후처까지 가족으로 보듬고, 병든 시아버지를 내내 수발하는 엄마 장소심(윤여정 분), 낳자마자 버려둔 아들(옥택연 분)을 못 잊고 돌아왔지만 엄마라는 말도 못한 채 숨기고 살아왔던 후처 하영춘(최화정 분), 할 줄 아는 건 주먹질 밖에 없지만 누구보다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의리파 막내 강동희(옥택연 분), 아이들보다 더 순수한 얼굴로 일곱 살 시절에 머무른 쌍둥이 누나 강동옥(김지호 분), 꿈은 딴따라 능력은 미지수 그래도 가족만큼은 끔찍히 여기는 따뜻한 큰 형 강동탁(류승수 분). 복잡다단한 가정사만큼이나 인물색도 다채롭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의 어깨를 보듬고 있다.

소년은 마을을 떠나고, 한 가족의 자랑이 돼 돌아오기까지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가족을 향한 마음을 지운 채 고향이라는 어린시절의 공간은 까마득히 지우고 살았다. 그립고 따뜻한 이름이었던 동시에 벗어나고 싶고 도망가고 싶었던 긴 시간은 아니었을까. 어른이 돼 돌아온 마을에서 동석은 자신 이외엔 아무도 그 자리를 버리지 않았음을, 누구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과정이 서서히 그려진다.
드라마는 이 과정에서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복수와 멜로를 커다란 줄기로 가져왔다.
벌써 20회를 달려온 ‘참 좋은 시절’은 그간 엉켜있던 고리들을 하나씩 풀어내는 듯 보였지만, 다시 새로운 고난도 집어넣어 돌아온 소년을 테스트한다. 동석의 변화과정을 살피기 위해선 고향 마을에 얽인 권력의 비리와 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작은 마을의 아픔은 ‘가진 자’로부터 비롯됐다. 가난했지만 다복했던 동석의 가정이 쑥대밭이 된 건 마을의 공주님으로 자랐던 해원의 가정으로부터 비롯됐고, 평안했던 해원이 하루 아침에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건 현재의 권력을 가진 오치수(고인범 분)로부터 시작됐다. 해원의 아버지의 음주운전에 동석의 할아버지(오현경 분)은 반신불수가 됐고, 동석을 살리려 동옥을 내버려분 사고 때문에 그의 나이는 일곱 살 쯤에 멈춰있다. 해원의 집안을 무너뜨리고 그의 아버지를 죽게 한 건 다름 아닌 오치수, 해원은 때문에 복수 하나만을 위해 자신을 던졌다.
드라마는 해원과 동석의 사랑을 큰 고난 없이 풀어가는 듯 보였지만, 첫사랑이 틀어지던 15년 전처럼 현재의 사랑도 쉽지만은 않다. 27일 방송된 20회에서는 이제 막 시작하려는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의 걸림돌로 과거 사고의 진실이 오치수의 극악한 혀를 통해 동석에게 전해졌다. 동석은 해원의 손을 붙잡은 채 “니네 식구도 없고, 우리 식구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데로 도망갈까?”라며 애절하게 말해보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된다.
드라마는 아직 갈 길이 멀다. 50부작으로 편성된 주말극이기에 ‘참 좋은 시절’이 풀어갈 이야기는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그 과정에 또 어떤 고난이 이들 중 누군가를 도망가게 하고, 되돌아오게 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참 좋은 시절’은 그동안 지켜온 변치 않는 가치를 묵묵히 그려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검사가 된 소년은 하필이면 고향으로 돌아와 15년 전의 이야기와 다시 마주했을까. 드라마는 그를 통해 진정한 가족애를 돌아보고 사람의 따뜻함을 말한다고 기획의도를 밝힌다. 모든 것이 멈춰선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과 그들의 이야기는 모든 비극의 단초이자 분노와 절망의 제공자인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가치’는 어디에 있냐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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