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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걷고, 또 걷기. 당선으로 가는 길이다”
한인 정치력 신장단체 아이캔(iCAN, inter-Community Action Network)의 찰스 김 회장. 그는 한인으로는 유일하게 선거 컨설턴트라는 직함을 가지고 매년 크고 작은 선거에 관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인을 비롯해 40인 이상의 선거 캠페인을 주도했다.
공식적으로 선거 캠프를 이끌지 않더라도 선거에 출마하는 많은 한인후보들이 찰스 김 회장의 자문을 구한다. 각 지역구의 정치적 특징와 유권자 분포, 투표 경향 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찰스 김 회장은 1983년 한미연합회(KAC)를 만들어 한인 비영리단체로는 최초로 미 전국구 단체로 키워낸 인물이다. 한미연합회는 한인들의 정계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며 한인 정치단체로의 초석을 다졌다. 2007년 전국회장 직을 사퇴한 이후에는 OC지역을 중심으로 아이캔을 만들어 청소년 인턴십 프로그램, 한인 유권자 성향 분석, 지역 정치인들과의 연계, 한인 후보 발굴 등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한인들이 정치력을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직접 한인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들어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법안이 논의되고 있는지 알고 그에 따라 한인사회의 권익을 모색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찰스 김 회장은 지난 1년여 동안 ‘정치운동가 찰스 김’이 아닌 ‘영 김 후보의 남편’으로 살았고 이제 ‘영 김 하원의원의 남편’으로 더 주목 받고 있다.
지난 11월 선거에서 가장 주목 박빙의 승부를 치뤘던 주 하원 65지구는 소수계 여성 후보끼리의 맞대결로 공화당과 민주당의 자존심을 겨루었던 곳이었다. 영 김 의원은 현직 의원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한인사회에 ‘남가주 첫 여성 하원의원이자 첫 공화당 의원’이란 타이틀을 선사했다.
영 김 의원의 새크라멘토 입성은 이들 부부에게 많은 의미를 지닌다.
“남편으로서 아내가 자랑스럽고 우리 가족에게 기쁜 일인 동시에 정치적 동지로서 오랜 시간 함께 꿈꾸고 노력해 온 결과라 뿌듯하다. 한인정치력 신장의 초석이 됐다는 점에서 기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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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로이스 연방 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23년을 일하면서 지지자 층을 탄탄하게 확보했던 영 김 후보를 두고 사람들은 ‘준비된 후보’라고 불렀다. 그 준비된 후보를 만든 것은 남편 찰스 김이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일을 놓고 있던 아내에게 에드로이스 보좌관직을 적극 추천한 사람도 그였다.
“커뮤니티에 도움을 줄 목적이었다. 아내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특유의 친화력이 있고 무슨 말을 하면 집중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당시 1.5세, 2세들의 정계진출을 적극 부르짖고 있었는데 아내는 이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1년 전 보좌관직을 내려 놓으며 주 하원의원 출마를 선언했을 때도 냉정하게 평가했다.
“소수계 특히 아시안 여성 정치인에 대해 유권자는 매우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다. 게다가 영 김은 한 지역구에서 23년 넘게 직접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로이스 의원을 보좌했다. 다수의 결의안에도 참여했다. 지역구과 공화당 내에서 먼저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누가 보아도 손색이 없는 후보였다”
하지만 정작 선거 캠프가 꾸려지고 본격적인 캠페인에 돌입했을 때 김 회장은 냉철한 선거 컨설던트의 자리가 아닌 남편의 자리를 택했다. 보다 객관적인 입장을 가진 전문가가 캠페인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역할은 아내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 결론 내렸다.
“날마다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아내를 다독이는 것이 내 일이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고 밥 먹으라 하고 쉬라 하고… 내가 캠페인을 맡은 후보에게는 당연히 못할 말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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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김 회장은 지난 12월 1일. 세크라멘토 시의회 입성해 당당히 취임선서를 하는 아내를 뿌듯하게 지켜봤다.
영 김 의원은 일주일에 나흘은 주로 새크라멘토에서 보내고 주말에 풀러튼으로 돌아온다. 본의 아니게 주말 부부가 되었다. 캠페인 기간에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곁을 지켰지만 이제 김 회장도 본인의 자리로 돌아왔다. 김 회장은 제2의 영 김, 제 3의 영 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말한다.
그를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좋은 후보감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 출마를 권하기도 한다.
“2년 후 풀러튼, 라미라다, 부에나 팍, 브레아는 한인 시의원이 충분히 승산이 있는 도시다.
출마여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세가지만 확실히 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도 걷기, 둘째도 걷기, 셋째도 걷기다. 로컬 선거는 발로 뛰며 직접 유권자들과 만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지난 2014년은 미주 한인 정치사를 다시 쓴 해였다.
한인 사회는 새로운 주 하원의원, OC수퍼바이저, 판사, 시장, 교육위원, 시의원을 탄생 시켰다.
지난 선거에서 보여주었던 한인 유권자의 힘이라면 2017년, 우리는 더 큰 기적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