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스토리] 원두커피 전문기업 ‘쟈뎅’ 윤영노 회장의 ‘커피 외길인생’

-원두커피 대부로 불릴만큼 ‘원조의 길’ 걸어와
-“원두커피 시장, 홈카페로 키우겠다” 새로 꿈꿔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크리스마스를 앞둔 1988년 12월. 서울 압구정파출소 앞에 국내 첫 원두커피 전문점 ‘쟈뎅 커피타운 1호점’이 오픈했다. 1층이 전면 유리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커피전문점은 지하나 지상2층에 ‘다방’이 유행하던 당시엔 굉장히 생소한 풍경이었다. ‘쟈뎅 커피타운 1호점’에서는 에스프레소, 카페오레, 카푸치노 등의 커피를 1000원~1500원에 판매했다. 다방 커피 가격이 2000원~2500원이던 시절, 원두커피를 파격적인 값에 내놓은 것. 케익류와 패스츄리 같은 디저트도 함께 선보였고, 당시 중형차 한대 가격인 1500만원 안팎의 전자동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도 갖췄다. 본인이 주문 후 직접 가져다 먹는 ‘테이크-아웃’ 방식을 도입한 것도 당시엔 낯설었다.

윤영노(67) 회장은 ‘쟈뎅 커피타운’을 통해 한국에 원두커피 시장의 문을 연 주인공이다. 어찌보면 원두 커피의 원조이자 대부라고 불리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만큼 커피에 인생을 걸어왔다.

최근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쟈뎅 본사에서 윤 회장을 만나 원두커피 사업 진출과 관련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 봤다. 

윤영노 쟈뎅 회장이 자사의 스페셜티 커피전문점 ‘커피휘엘’에서 핸드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고(추출하고) 있다. 그는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기업 ‘쟈뎅’을 앞으로는 홈카페 시장을 통해 더욱 성장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크라운제과에서 사업훈련 받고 독립…‘커피’에 꽂히다

윤 회장은 크라운제과의 창업주인 고(故) 윤태현 회장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다 크라운제과에서 일을 배우면서 업무차 일본에 가게 됐다. 1972년 크라운제과 일본 지사를 설립했고, 이듬해 일본 와세다대학교에 들어가 경제학을 전공했다.

“제가 크라운제과에 재직했던 1970~80년대는 크라운제과 역사상 가장 성장했던 시기죠. 1년에 50~60%씩 회사가 컸어요. 제가 회사 볼륨을 12배로 키워 놓고 나갔죠. 2000년대 초 쟈뎅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죠.”

윤 회장은 크라운제과에서 10여년 간 일하면서 사업훈련을 받아 독립한 뒤, 1984년 ㈜쟈뎅의 전신인 영인터내쇼날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크라운제과 경영은 일찌감치 형인 윤영달 회장이 하는 것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무역회사들은 주로 수출을 했지만, 사업성을 검토하다가 ‘커피를 수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무역흑자가 나면서 외국에서 수입개방 압력을 넣기 시작했어요.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니 수출보다는 수입을 해야 했고, 일본을 보니 커피가 사업성이 크더군요.”

그가 일본에서 생활하던 1980년대는 일본 경제가 최대 호황기였다. 당시 일본의 커피전문점은 15만개로 최전성기를 누렸고, 일본의 유명 커피브랜드인 도토루 매장은 800여개에 달했다. 하지만 국내에 원두커피 관련 정보는 전무했다. 그는 도토루에 조인트 벤처를 제안했다가 금액을 너무 세게 부르는 바람에 포기한 뒤 독립을 결심했다.

“그 정도 돈이면 그냥 내가 하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더군다나 식품은 처음부터 맛을 현지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맛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다기에 안되겠다 싶었죠.”

결국 윤 회장은 외국 서적을 보고 자료를 수집했고, 일본의 지인들로부터 도움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오픈한 신개념 커피전문점 ‘쟈뎅 커피타운’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최고 품질의 커피를 맛본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쟈뎅 커피타운’은 1990년대 중반 사업 철수 때까지 130여개 점포로 확장했다.

▶‘최초의 복합점포’…폭발적 인기 vs 수차례 벌금

윤 회장은 ‘쟈뎅 커피타운’ 1호점에서 직접 카운터에 서서 주문을 받았다. 직원들 훈련도 직접 시켰다.

“대기업 부사장이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앞치마를 두르고 주문을 받는 모습을 보이니, 간혹 이웃 사람들이 보고 놀라기도 했어요. 하지만 내가 직접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제대로 된 원두커피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움도 몰랐어요.”

‘쟈뎅’은 한국에 원두커피 전문점 바람을 몰고 왔지만, 각 점포들이 잘 운영된 것과 달리 본사에서는 큰 이익을 내지 못했다. 본사에서는 원두커피만 공급했고, 인테리어나 가맹점 비용 등을 따로 받지 않은 탓이다.

“오로지 좋은 원두커피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각 매장마다 직원 관리가 안됐고, 싼 원두로 비슷하게 흉내를 낸 커피전문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죠.”

그의 원두커피사업 도전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의 각 구청에서 수없이 날아온 벌금 납부고지서다. 커피음료와 케이크, 각종 기구 등 세가지가 함께 들어선 복합점포는 당시 법규상 ‘불법’이었다. 다방 허가와 베이커리 허가, 잡화점 허가 등 세가지를 받아야 하는데다 한 곳에서 세가지를 함께 운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

“인근 베이커리 샵에서 ‘다방에서 왜 베이커리를 하느냐’고 고발을 하니, 벌금 고지서가 수없이 날아왔어요. 수차례의 설득과 설명 끝에 1990년대 중반 법이 바뀌면서 복합점포 운영이 가능해졌죠.”

▶‘쟈뎅 커피타운’ 철수…‘커피 유통사업’ 확대

윤 회장은 애초에 ‘쟈뎅 커피타운’을 만들면서 마스터플랜으로 3단계 계획을 세웠다. 1단계로 로드샵을 통해 ‘쟈뎅 커피타운’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2단계로 브랜드를 내세워 커피나 관련 기구들을 백화점을 비롯한 특수 유통망을 통해 확대시킨다는 전략이었다. 3단계는 일반 소비자와 편의점에까지 원두커피를 확대시키자는 구상이었다.

쟈뎅 커피타운이 1990년대 중반 130여개 점포를 끝으로 문을 정리한 것은 이 같은 사전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에다 유사한 커피전문점들이 수없이 생겨나면서 “이러다가 ‘쟈뎅’이란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겠다”는 걱정도 더해졌다.

“쟈뎅(JARDIN)이란 이름은 ‘프랑스 정원의 한쪽 테라스에서 편안하게 커피를 마신다’는 뜻을 담아 ‘정원’이라는 뜻의 불어에서 따왔어요. 소비자들에게 원두커피의 진정한 맛을 제대로 보게 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커피를 통해서 짧은 순간이나마 평온과 안락함을 제공하고 싶어요.”

그는 쟈뎅 커피타운 사업 철수 후 커피제조업으로, 유통망 확대에 주력했다. 1990년대 말 이마트와 남양유업에 파트너사로 커피제품을 생산하면서 커피 유통사업이 확대됐고, 2000년대 들어서는 편의점에도 진출했다. 편의점을 겨냥해, 원두커피 추출액으로 만들었던 ‘리얼 아이스’(현재의 까페리얼) 파우치 제품도 개발했다.

“1999년 개발한 ‘1회용 원두 드립원컵’ 제품은 쟈뎅의 특허상품이었어요. 분쇄된 원두가 컵에 담겨 있어 물만 부으면 쉽게 드립커피를 즐길 수 있는 제품인데, 당시 국내에서 처음 선보였죠.”

쟈뎅은 2000년대 초반 의정부 커피공장을 천안공장으로 확대ㆍ이전했다. 이어 2011년에는 150억원을 투자해 천안공장을 연간 최대 5000t 규모의 로스팅 설비를 보유한 커피 제조공장으로 5배나 늘렸다.

▶“한국 커피시장은 아직도 성장세”…다음 타겟은 ‘홈카페 시장’

윤 회장은 한국의 커피시장이 전체적으로는 아직도 성장세에 있다고 보고 있다. 원두커피 시장의 경우, 생두 수입량이 2013년 10만6360t에서 2014년 12만5387t으로 17.89% 가량 성장했다. 이는 2004년(8만426t)에 비하면 55.9% 성장한 수치다.

“전체 커피시장은 4조5000억원 규모로, 2013년에 4조원을 넘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81년에 커피전문점이 15만5000개에 육박했지만 2009년에는 7만7000개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죠. 그 수요는 홈카페와 같은 시장으로 다양하게 옮겨갔지요. 전체적인 흐름에선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게 갈 것이라고 봅니다.”

윤 회장이 향후 홈카페 시장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쟈뎅은 2005년 약 160억원의 매출에서 2010년에는 436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지난해 500억원의 매출에 이어 올해는 600억원이 목표다.

“한잔의 원두커피를 통해 짧은 순간이지만 안락함을 느낄 수 있도록 앞으로는 홈카페 시장에서 다양한 커피 신제품을 만들어 원두커피 시장을 키워 나갈 생각입니다.” 

yeonjoo7@heraldcorp.com

▶윤영노 회장이 걸어온 길

-1948년 서울 출생

-1967년 배재고등학교 졸업

-1978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78년 크라운제과 기획실 입사

-1980년 한업인쇄 대표

-1983년 크라운제과 부사장

-1984년 영인터내쇼날 대표이사

-1988년 국내 최초 커피전문점 ‘쟈뎅 커피타운’ 오픈

-1993년 국내 최초 커피전문 교양서 ‘커피’ 발간

-1995년 쟈뎅 대표이사 사장

-2008년 쟈뎅 대표이사 회장

-2008년 한국재활재단 이사장

-2014년 한국겨레문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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