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태의 일상 속으로] 나의 일탈- 짧은 고국여행

헬퍼 인건비도 제대로 안나오는 창고 지붕공사를 끝냈다. 지붕에 루핑만 갈아씌우면 될 줄 알고 견적과 동시에 계약금을 받고 지붕에 올라가니 신발이 푹푹 빠지는 느낌이어서 루핑 판재를 뜯고 보니 온갖 벌레들과 오랜 비에 쩔어 여기저기 썩어 있어 아예 지붕을 들어내야 했다. 10월의 끝자락에서 발악하는 듯한 늦더위의 뙤약볕 아래서 치러야 하는 지붕공사는 무척이나 힘겨웠다. 도와주던 헬퍼도 더워서 못하겠다고 하루만 일하고 그만두기를 몇번이나 거듭한 끝에 겨우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전에 라캬나다 주택의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도 수도 파이프들이 삭아서 풀러밍 공사를 먼저 해야 했다. 집주인이 귀띔도 해주지 않는 바람에 밑지는 견적을 내고 일한 셈이었다.

공들인 걸 알아주면 다행이고 모른 척해도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인생 수양하듯 일을 해냈다. 딸린 식구 없이 홀몸이니 망정이지하고 허허 웃어 넘겼다. 훌훌 털고 한국으로 단풍 구경이나 가자하고 5박 6일간 짧은 일정으로 LA공항을 떠났다. 인천공항에서 KTX열차로 2시간 20분만에 포항에 도착, 내 주소지로 돼 있는 초등학교 동창집에 갔다. 이튿날 새벽 오어사 오어지 둘레길을 따라 가볍게 조깅을 했다. 운제산을 넘어가는 가파른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절 풍경은 비단폭처럼 울굿불긋했다. 우청룡 좌백호의 풍수지형에 들판에는 긴 출렁다리로 연결된 호수가 아름다워 한국의 모든 절터는 풍치가 다 이러한가 싶다.

포항 어판장 먹거리 시장에서 엄청나게 큰 대게를 세마리에 15만원을 주고 어른 셋이 실컷 먹고 남겼다. 사흘 밤을 지내고 포항을 떠나 강릉까지 가는 7번 국도를 달렸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내 고향 묵호를 지나고 싶었다. 비 내리는 동해 바다 색 바랜 바닷가는 한폭의 수채화를 보듯 쓸쓸함이 배어나는 경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침 일출도 볼 겸 강릉 경포대 바다를 향해 자리잡고 있는 ‘타임’이라는 모텔에 짐을 풀었다. 경포에서 사천 앞바다로 이어진 곳의 등대는 홀로 덩그러니 깜빡이고 있고, 누가 날린 건지 모를 풍등이 밤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

북적거리는 관광객들을 비켜가며 커피맛 좋기로 유명한 ‘보헤미안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을 사 마시며 밤바닷길을 산책했다. 새벽 일찍 구름 속에 내민 빨간 태양을 본 후 초당 순두부집을 찾았다. 예년부터 자주 들르던 곳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넘어오는 한계령. 산과 산이 산악으로 능선을 타고 바람을 실어 달리는 듯하다. 붉게 물든 여인의 귀밑머리가 닳도록 하늘로 치솟는 단풍. 피로 물든 태를 감듯 가을산은 이승의 한가지 모습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는 것같았다. 그렇듯 가을산은 끝없이 겨울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멀리 떠나 멀리와

혼자 살아도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한 것은

내안에 가끔씩

신이라는 분이 내안에 살아

계시기에

수고하는 건강을 남달리 주시고

역경 속에

보람도 끼워 넣어주시는

기쁨도 주시기 때문이다 .

– 자작시 <내가 행복한 것은>

미국땅의 일터에서 낡고 썩은 지붕처럼 덧씌워진 스트레스와 고독. 고국의 산사에서 혈관을 끝없이 돌고 도는 듯한 핏빛 단풍 행렬과 고향의 동해바다 바람으로 털어낼 수 있었다. 훌쩍 떠났던 여행은 짧았지만 여운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또 다시 열정으로 차오르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하늘로 차고 오르는 솔개의 날개짓처럼 힘차게 일상을 향해 부딪혀보리라.

이상태(핸디맨)

이상태/시인·핸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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