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동포 간의 사소한 갈등을 보며

흔히 미국사회는 ‘여성들의 천국’,'어린아이들의 천국’으로 일컫어진다.  한 가지 더 보태어 ‘개들의 천국’이란 표현도  미국 사회를 단정짓는 말로 손색이 없을 듯 싶다. 개들만을 위한 공원이 따로 있을 정도니 미국 사회의 개 사랑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크고 작은 개들을 데리고 주택가를 걷고 있는 동네 주민들의 모습은 누구를 위한 산책인지 헷갈릴 정도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유명인사나 헐리웃 연예인들의 애완견들은  그들 못지않은 유명세를 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호대기중인 윌셔길의 옆 차량에서 애완견을 껴안고 운전하는 한인들을 목격하는 것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일상생활의 동격체로 인정받고 있는 애완견들의 삶은 홈리스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민자들의 삶보다 질적으로 풍족하고 호강된 삶을 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집밖에서 집을 지키며 도둑이나 쫓고 한평생 주인에게 충성하다 죽어서까지 풍요로운 식탁에 일조하는 한국 견공들의 삶이 새삼 불쌍하게 여겨진다. 애완견들에게 끔직한 사랑을 나타내는 미국 사회지만 엄격한 통제도 만만치 않다.

각종 공공기관이나 장소 그리고 위생문제가 발생되는 마켓이나 식당들에선  애완견들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한인들이 자주 찾는 코스코,랄프스등의 마켓 입구엔 애완견 출입금지의 선명한 빨간 사인보드가 눈에 확 들어오는 사실에서 그 엄격성을 감지할 수 있다.

한인마켓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한인마켓들도 애완견 출입금지 사인보드를 붙여놓고 위생문제및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주 한인마켓에선 애완견 한마리로 인해 평범한 인생이 범법자가 되고만 기막힌 사건이 일어났다.

애완견을 데리고 마켓엔 들어온 한인 고객과 이를 제지하는 마켓 한인매니저 간에 몸싸움이 벌어져 결국 마켓 매니저가 체포되는 불상사를 연출했다. 지금 한국에선 수십만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장대비를 맞아가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목이 터져라 수입 반대를 외칠때 옆자리의 시민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소박한 사실에 온 국민은 친구처럼 서로를 부둥켜 껴앉고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고 있다.

이른바 주류라는 이름의 백인사회 앞에서 기를 못 펴고 이국땅에서 사는 것도 서러운데 한인들끼리 강아지 한마리 놓고 싸워 결국 한 집안의 가장이고 아버지가 평생 범법 기록을 달고 살아야하는 운명에 처했으니 오늘따라 펫샵의 예쁜 강아지들이 얄미워보이기만 한다.

피해자인 한인고객이 랄프스나 코스코를 샤핑장소로 택했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아예 강아지를 데리고 매장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이고 설사 들어갔다 하더라도 외국인 매니저의 규정 준수 요구에 순순히 응했을 지도 모른다. 또한 타인종 고객이 규정을 어겼다면 매장 매니저의 행동이나 판단도 경찰이 출동할 정도의 상황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개 한마리 때문에 수갑을 찬 채 경찰에 연행됐던 마켓 매니저와 그의 식구들에게 올해의 파더스데이는 미국에 온 이후 가장 우울하고 서러운 날이 됐을 것이다.

한인커뮤니티의 외형적 성장은 눈부실 정도다.그러나 그같은 성장에 걸맞지 않게 한인들 간의 행동양식과 서로를 대하는 방식은 한참 뒤처져 있다는 느낌이다. 설령 서로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다고 해도 이국땅 LA의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헤아려 감정이 앞서더라도 일단 꾹 눌러 참고 이해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일까. 동포의식이란 거창하게 국가적인 대사 앞에서 어깨동무할 때만 쓰는 말은 아니다.

김윤수/미주본사 부장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