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안이 금융위기를 잠재울 수 있을까.시장 전문가들은 미 정부의 발빠른 대응이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미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월가는 물론 한국 시장에도 단비가 될 전망이다. 투자심리가 안정돼 단기적으로 주가 랠리가 펼쳐지고 원/달러 환율 급등세도 진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급등세였던 국제유가의 하락세가 완연하고 주가의 경우에는 중국의 증시 부양책이라는 호재까지 맞물려 있다.
하지만 구제안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구제안의 실효성을 장담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①7000억달러로는 역부족=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모기지 관련 자산이 총 12조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7000억달러 규모의 부실채권 구제법안으로는 급한 불을 끄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금융기관들이 지금까지 4500억달러 정도를 상각했지만 시장에서는 최고 1조1000억달러를 더 상각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바클레이캐피털의 마이클 폰드 분석가의 최근 보고서를 인용해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시스템 구제를 위해 미 정부는 7000억~1조달러를 더 빌려야 하고 여기에 패니매와 프레디맥 국유화, AIG 구제금융, 중앙은행의 대출 확대, 경기 침체 등에 따라 4550억달러가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②매입대상, 매입가 공정성 시비=FT는 “구제안은 서류상으로 마련됐을 뿐이다.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너무나도 복잡하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부실자산을 가장 낮은 가격에 사겠다는 원칙(역경매)만 세웠을 뿐 매입 대상과 적정 매입가, 추후 매각 시점 등에 대해서는 백지 상태여서, 부실자산 매입·매각 가격은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RSM 맥글래드레이의 임원인 로렌스 레빈은 “공정한 가격에 대한 견해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의회 승인=구제안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의회를 먼저 설득해야 한다. 바니 프랭크 미 하원 재정위원장은 “부실업체 경영진에 대한 각종 수당 제한과 집을 압류당할 위기에 놓인 중산층에 대한 보호안 등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구제안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을 회계감사원장에게 요구했다”고 AP통신이 22일 보도했다.
대선이 임박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구제안이 결국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하루빨리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회의 절충안 마련이 시급하다.
④재정적자 악화=미 정부가 올 들어 금융기관 회생과 금융시스템 정상화를 목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힌 공적자금이 벌써 1조8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앞으로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안정화되지 않을 경우 구제금융 규모는 2조달러에 달할 수도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정부가 이처럼 금융위기 타개를 명분으로 달러를 계속 찍어낼 경우 미국 경제가 이를 감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02년 이후 적자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의 재정수지는 올해 경기부양책 등으로 작년의 배가 넘는 3894억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내년에는 적자 규모가 사상 최대인 48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정부 측은 추정하고 있다.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누적된 전쟁비용에 재정적자마저 이처럼 커질 경우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역할과 위상은 바닥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⑤밑 빠진 독에 물 붓기(?)=금융위기의 진원지는 미국 집값 하락이다. 집값 하락이 멈추지 않으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파생상품 부실에 따른 신용위기도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미국의 부동산 경기 회복이 빨라야 내년 상반기 이후로 점쳐진다는 점이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집값이 계속 떨어져 신용위기가 악화되고 있다”면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주택시장의 버블은 엄청나며 해소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이터퀵의 애널리스트인 앤드루 르페이지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는 시장의 흐름을 봐야 한다”면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미국의 집값이 지금보다 10%는 더 떨어진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양춘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