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강준모(45) 씨와 그의 중학생 아들은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찬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면 한 차례씩 홍역을 치른다. 코와 눈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가려운 데다 줄줄 흐르는 콧물과 발작성 재채기 때문이다. 가려움을 참지 못해 눈과 코를 너무 비벼 눈동자는 빨갛게 충혈되고, 콧속도 헐어버린 것처럼 아파 온다. 한동안 눈물, 콧물을 쏟아내다 보면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다.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뒤에 찾아오는 시원한 가을이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는 반갑지만은 않다. 이들은 한동안 코막힘, 콧물, 재채기를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맑은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러 민망할 정도다.
평소엔 증상이 없다가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 때 알레르기 비염이 생기는 까닭에 흔히 ‘찬바람 알레르기’라고 여기지만 실은 찬 바람이 원인은 아니다. 찬 바람은 증상을 악화시키는 물리적 자극이긴 해도 원인 자체는 아니다.
이는 일교차가 커지고 날씨가 건조해지며 호흡기 점막이 민감해지면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물질에 더 취약해진 탓이다. 코뿐 아니라 눈도 가렵다면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함께 생긴 것이다. 알레르기의 원인물질은 50여 종이 알려져 있으며 나무, 잡초류의 꽃가루와 집먼지, 집먼지진드기, 곰팡이, 동물의 털 등이다.
증상이 심하면 일단 항히스타민제, 스테로이드 성분 항염증제와 같은 약물 치료를 받는 게 필요하다.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의 조유숙 교수는 “적절한 약물 치료를 한 뒤 증세가 완화되면 이후 찬 공기를 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찬 바람에 맞는 것만으로 생기는 질환은 따로 있다. 찬 공기가 피부에 닿아 두드러기가 생기는 한랭 알레르기(cold allergy)다. 먼지, 꽃가루, 음식물 등 알레르기 원인물질과 상관없이 찬 공기 자체만으로 심한 두드러기 증상이 나타난다. 대개 한겨울에 많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도 나타날 수 있다.
지미안피부과 김경호 원장은 “한랭 두드러기 증세가 심한 사람은 아이스크림만 먹어도 호흡곤란이 오거나 찬물에 수영을 하다가 전신 쇼크에 빠질 수도 있다”며 “상태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을 약하게 해주는 항히스타민제제로 조절이 가능하지만 원인 치료는 되지 못하기 때문에 찬 바람이라든지 찬물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그 자체로 상당히 성가신 질환이지만 방치하면 합병증이 생기기도 쉬워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비염으로 인해 귀의 압력 조절에 이상이 생기고 공기가 차면 액체가 고이는 장액성 중이염이 된다.
비강 주위 두개골 내에 위치한 부비동에 점액이 축적되거나 세균이 침범해 부비동염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콧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후비루 증후군이 발생해 만성 기침이 될 수도 있다.
한림대의료원 한강성심병원 이비인후과의 김용복 교수는 “코가 막히면 냄새를 맡기 어려워지듯 비염이 생기면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며 “이때는 치료를 통해 냄새 통로를 뚫어주면 후각이 회복되지만 감염으로 후각신경이 영구 손상된 경우는 비염이 치료돼도 후각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약물 치료로 증상은 조절할 수 있지만 완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은 면역치료다.
알레르기 원인물질을 아주 적은 양부터 주사해 서서히 증가시켜 가며 면역반응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3~5년간 지속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고 모든 환자가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단점이 있다.
결국 증상 정도,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부작용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한 치료 방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의들은 권고했다.
조용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