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행업계 자산규모 2위인 씨티그룹이 미 정부의 2차 구제금융이라는 기회를 통해 숨통을 틀 수 있을지가 주목받고 있다.
한때 자산규모 1위를 달렸던 씨티그룹은 불과 두달 전만 해도 부실화된 와코비아 은행의 우선 인수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보유 자산의 부실화 우려 속에 지난달부터 주가가 급락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왔다.
미국 금융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고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도 정부의 지원이 씨티그룹의 모든 부실을 덮을 수는 없는 만큼 장기적 측면에서의 효과는 미지수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美서 씨티는 AIG와 같은 위상 = 미국 정부가 리먼브러더스 투자은행과 달리 AIG에 대해서는 회생 결정을 내리고 2차 지원까지 단행한 배경에는 미국 금융업계, 나아가 세계 금융업계에서 차지하는 AIG의 위상이 큰 몫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AP통신 등 미국 언론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씨티그룹이 정부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받는 과정에서도 금융계에서 차지하는 씨티의 위상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고 풀이했다.
지금도 세계 은행업계에서 씨티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세계 106개국에서 2억명에 이르는 고객 기반을 갖고 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씨티같은 대형 금융기관이 끝내 공중분해된다면 그 ‘뒷감당’을 하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씨티그룹의 자산은 장부에 등재돼 있지 않은 부분을 포함해 3조2천억달러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긴급 구제금융대책에 쓸 7천억달러 가운데 추가 조치 없이 쓸 수 있는 3천500억달러의 대부분을 이미 소진한 상태다.
지난 주말에 진행된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씨티그룹 경영진과의 마라톤 협상장에 헨리 폴슨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물론 차기 행정부의 재무장관으로 내정된 티머시 가이스너 뉴욕연방은행 총재까지 참석했다는 점은 미국 정부가 씨티그룹의 회생 가능성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씨티가 받는 지원과 부대 조건은 = 미국 정부의 이번 지원으로 씨티그룹은 부실자산에 대해 최대 3천60억달러까지 정부의 지급 보증을 받는 것은 물론, 이미 받은 250억달러 외에 추가로 200억달러를 더 수혈받는다.
씨티는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부실자산에서 실제로 지급 불능 사태가 발생하면 1차로 290억달러, 총 567억달러의 부담을 져야 하지만 부담하는 손실의 상한선이 정해졌다는 점은 기업 입장에서 큰 짐을 덜게 되는 부분이다.
이번 정부 지원에 따라 씨티그룹이 경영진을 재편할 필요는 없지만 경영진의 보수에는 제약을 받게 되며, 향후 3년간 보통주 1주당 1센트 이상의 분기 배당을 지급하려면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씨티그룹은 보유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채권에 대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인디맥 은행에 강제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시적인 모기지 금리 인하 같은 일반 주택 구매자들을 위한 차압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티그룹 입장에서는 이번 정부의 지원을 통해 시장의 불안감이 해소된다면 정부 지원에 따른 경영상의 제약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이득을 보게 된다.
씨티그룹의 장부 외 자산 1조2천300억달러 가운데 6억6천700만달러가 모기지 관련 자산으로 평가되고 있고, 금융위기의 장기화로 인해 이 자산들의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씨티그룹의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남은 과제는 = 금융권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200억달러로 과연 씨티그룹의 모든 문제를 덮을 수 있겠냐는 의문이다. 씨티그룹이 와코비아 은행을 인수하려 시도했던 배경에는 와코비아 은행의 우량 자산을 이용해 재무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는게 당시 협상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씨티그룹은 와코비아 인수가 좌절된 뒤 미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가 하면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 기금이 씨티그룹의 부실자산 일부를 해소하기 위해 더 지원돼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미국 정부에 ‘구조 요청’을 했지만, 번번이 정부로부터 거절당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이번 조치로 인해 다른 미국 은행들이나 금융기관들로부터 비슷한 요구를 받게 될 수 있다.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그리고 FDIC는 공동 성명을 통해 “미 금융업계의 체질을 개선하고 미국인과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지원을 결정했다고 발표했지만 다른 은행이나 헤지펀드, 나아가 사모투자회사로부터 비슷한 요구를 받을 때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졌다는게 금융 전문가들의 견해다.
긴급 구제금융 재원 가운데 절반 정도를 이미 써버린 상태에서 규모도 명확하지 않은 금융기관들의 부실을 언제까지 떠안을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금융기관은 구제하고 어떤 기관은 시장 원리에 맡길지를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는 점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내용이다.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