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칸 국제영화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세계 최고의 영화축제가 오는 13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 이번 영화제는 전 세계적인 경제 한파 속에서 열리지만 사상 유례없이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버라이어티는 이번 영화제 초청작들을 두고 “현존 최고 감독들의 인명사전 같다”고 평했고, 그 멤버 중 하나가 된 박찬욱 감독은 “잘나가는 정당의 공천 리스트를 보는 듯하다”며 뿌듯해했다. 그만큼 올해 영화제는 최근 몇 년간의 경향에 비해 뚜렷하게 달라졌다. 경쟁 부문에선 이름난 거장의 작품과 무명이나 신인급의 감독 영화가 적절히 섞였던 과거와 달리 이미 명성 높은 작가의 영화들로 대부분이 채워졌다.
공식 초청작 중엔 지난해 칸에 모인 관광객들의 눈길과 발길을 잡아끌었던 ‘인디아나 존스-크리스털 해골의 왕국’이나 ‘쿵푸 팬더’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없다. 영화팬들에겐 당분간 보기 어려운 최고의 라인업으로 상영작이 짜여졌지만, 영화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각국의 영화인들에겐 험난한 전쟁터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일본이 앞장서고 ‘브릭스(BRICsㆍ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의 자원 부국들이 돈을 쏟아부으면서 유로화의 초강세에도 불구하고 칸 해변은 밤마다 화려한 파티가 이어졌지만, 올해는 각국 간 영화거래가 더욱 침체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가운데도 한국 영화는 공식, 비공식 각종 부문에 무려 9편이 초청돼 성과를 높였다. 이창동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가리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거장들의 귀환, 타란티노와 박찬욱의 재회 지난 2004년 쿠엔틴 타란티노와 박찬욱은 각각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올드보이’) 감독으로 만났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이제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쟁자로 재회한다. 이 두 명의 감독 말고도 이번 경쟁부문 초청작엔 기수상자들이 많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은 타란티노를 포함해 라스 폰 트리에, 제인 캠피온, 켄 로치 등 무려 4명이다.
여기에 베를린 황금곰상과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석권했던 리안 감독도 가세했다. 작품 세계가 다양한 거장들의 이름들이 오른 만큼 경쟁 부문 초청작의 경향을 한마디로 요약하긴 어렵지만, ‘과거’를 조명하는 시대극이 많은 것은 이번 영화제의 특징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타란티노의 ‘인글로리어스 배스타즈’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이며 리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은 1960년대 말 히피들의 축제였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다룬 코미디다. 호주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의 신작 ‘브라이트 스타’는 19세기에 불우한 생을 살았던 영국 시인 존 키츠를 주인공으로 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화이트 리본’은 1913년의 파시즘 시대를 배경으로 했고, 마르코 벨로치오의 ‘빈체레’는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의 숨겨진 자식의 이야기를 다뤘다.
▶할리우드 대작은 없지만 할리우드 스타는 있다 올해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을 스타는 브래드 피트다. 타란티노 감독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다이앤 크루거, 새뮤얼 잭슨, 마이크 마이어스 등과 호흡을 맞췄다. 비경쟁부문 초청작인 테리 길리엄 감독의 ‘이매지너리엄 오브 닥터 파나서스’는 히스 레저의 유작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다.
히스 레저가 미처 못 마친 역할은 할리우드의 톱스타인 주드 로, 조니 뎁, 콜린 패럴이 번갈아 연기했다. 경쟁부문 초청작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신작 ‘브로큰 임브레이시스’의 페넬로페 크루즈, 비경쟁부문 초청작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 ‘아고라’의 레이첼 와이즈도 세계적인 여배우들이다.
▶아시아 영화의 강세를 주도하는 한국영화 올해 경쟁부문 초청작에선 미국 영화가 예년보다 훨씬 줄어든 2편만 포함된 반면 아시아영화는 무려 5편이나 초청됐다. 아시아영화의 강세를 이끄는 영화로는 단연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세계 각국 언론에 의해 꼽혔다. 경쟁부문엔 일본 영화가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홍콩 출신 두기봉 감독의 ‘벤전스’, 대만 출신 차이밍량(蔡明亮)의 ‘페이스’, 중국 정부에 의해 한때 제작금지를 당했던 러우예(婁燁) 감독의 ‘스프링 피버’, 필리핀 출신 브릴런트 멘도사 감독의 ‘키너테이’ 등이 황금종려상을 노린다. 한국영화로는 ‘박쥐’ 외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으며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정유미 감독의 ‘먼지아이’가 감독주간 상영작으로 선정됐다. ’6시간’(감독 문성혁ㆍ비평가주간), ‘남매의 집’(조성희), ‘경적’(임경동ㆍ이상 시네파운데이션), ‘허수아비들의 땅’(노경태ㆍACID) 등도 칸에서 상영된다.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은 ‘칸 클래식’ 프로그램의 복원작 상영 섹션에 초청됐다. 비경쟁, 특별상영 섹션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부문에 한국영화가 올라간 셈이다.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