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중년 여성의 연기가 화제를 모은다. 배우 김미숙은 연기 인생 30년 만에 SBS 새 주말극 ‘찬란한 유산’에서 처음으로 악역을 맡아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명길(사진)은 최근 끝난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 카리스마를 갖춘 대기업 여성 CEO 역할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최명길은 50세를 눈앞에 둔 나이로 평일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아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 중년 연기자를 미니시리즈 주연으로 내세운 적은 없었다. 위험 부담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텐데, 오히려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가 성공을 낳았다. 중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못했던 것은 드라마 제작진의 오판 때문이었다. 가령 엄마와 딸이 나오면 우리는 딸 중심으로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엄마의 대사는 딸 결혼을 반대 혹은 찬성하는 등 딸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엄마의 인생은 구색용으로 집어넣는다. 하지만 최명길이 맡은 ‘한명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자식의 이야기를 함께 맞물리자 평면적인 느낌을 넘어 입체적인 분위기가 살아났다. 사랑과 인생ㆍ응징ㆍ모성 등 복합적인 이미지를 지닌 한명인 캐릭터를 연륜과 연기력을 갖춘 중년 배우가 다양하고 미세하게 표현함으로써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최명길은 중반 이후 이야기들이 벌어지면서 긴장이 늦춰진 드라마의 고비고비에서 많은 인물과 이유 있는 갈등관계를 조성하는 카리스마 연기로 시청자를 드라마에 몰입하게 했다. 최명길이 맡았던 한명인 캐릭터는 중년 시청자만 즐겼던 게 아니라 20~30대들도 매우 좋아했다. 중년 연기자를 내세우면 분위기가 칙칙해지고 나이 많은 시청자들만 본다는 편견을 버려야 할 참이다. 한명인은 능력이 있는 여성이면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강인함까지 지니고 있는 캐릭터다. 기존 드라마에서 발견하기 힘든 인물이지만 현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얼마 전 만난 최명길은 “할리우드나 미국 드라마도 40~60대 배우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많아요. 아네트 베닝,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리프 등이 중심 이야기를 펼치잖아요. 우리는 딸 중심으로만 끌고 가는데,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멜로드라마의 주연을 경험한 중년 여성 연기자들은 주로 만만한 현모양처나 자신의 젊었을 때 이미지를 포기하고 망가진 모습으로 나온다. 김자옥 금보라 이혜숙 김영애 등이 그런 희화화 과정을 거쳤다. 이미연도 “우리나라에선 여배우로 살기가 너무 힘들다. 10~20대에는 외모로 먹어준다지만 나이 들어 용도 폐기되는 배우의 삶이 힘들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우아함의 대명사 이영애가 40~50대에도 그 이미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연륜만 추가해 나가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년 여성의 원숙함이 주는 지적이면서도 단호한 면도 지닌 한명인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부각시켰듯이 평일드라마에서도 제대로 된 40대~50대 여배우의 이미지를 계속 발견해 나간다면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이 드는 게 배우의 명줄을 누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세월의 농익음이 연기력으로 묻어날 수 있고, 그래서 중년의 욕망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됐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