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이 심상치 않다. 제작비는 높고 예상 시청률은 낮다. 일부에선 미쳤다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엠넷은 “음악시장이 요즘만 같다면 10년 안에 전멸할 것”이라는 경고를 해왔다. 실력없는 가수들이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고, 방송은 이를 조장한다.’슈퍼스타K’ ‘타임투락페스티벌’ 등 엠넷의 신규 프로그램의 면면에는 음악시장에 대한 그들의 문제의식이 또렷이 살아 있다. 이를 바로 잡아보겠다며 외로운 승부수를 던지는 엠넷의 행보는 아슬아슬하면서도 호기롭다.
▶신인 육성 4부작 ‘슈퍼스타K’ ‘제국의 아이들’ ‘휘성의 프리스타일 쇼’ ‘타임투락페스티벌’ 등 일명 ‘신인 육성 4부작’은 엠넷의 최근 변화를 가장 뚜렷이 보여준다. ‘슈퍼스타K’는 총 제작비 40억원을 투여한 대규모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8개 도시에서 두 달에 걸쳐 지역예선을 치르고 다시 수차례 본선을 통해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우승자에게는 앨범과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해 주고, 상금도 1억원에 달한다. 나이와 외모, 학벌에 관계없이 실력만으로 가수를 뽑고, 이를 제대로 양성해 보겠다는 것이다. ‘타임투락페스티벌’은 홍대 인디음악을 방송으로 끌어왔다. 지상파 방송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과감한 시도지만, 엠넷 제작진은 한 술 더 떠 “홍대 안에서도 잘 알려지지 못한 밴드를 중점 소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진행을 맡은 ‘크러쉬’의 안흥찬은 “후배들을 위해, 한국 록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국의 아이들’은 엉뚱하다. 스타가 되려는 신인과 기획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카메라에 담은 ‘제국의 아이들’은 기존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틀을 과감히 깼다. 엠넷의 황수현 제작국장은 “보통 신인가수를 육성하는 리얼리티는 과제와 노력, 성취라는 뻔한 줄거리를 따르게 마련인데, ‘제국의 아이들’은 기획사와 신인 사이의 갈등처럼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휘성의 프리스타일쇼’는 휘성의 진두지휘하에 매달 우수한 신인가수를 선발,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선정된 신인가수는 매 월말 ‘엠카운트다운’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엠넷은 왜? 지상파 방송과 난무하는 케이블 채널 가운데서 엠넷만의 색깔도 찾아야 했다. ‘서인영의 신상친구’ ‘엠씨몽 의대 가다’ 등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일대 화제를 낳기도 했지만, 예능만으론 타 방송사와 차별화하기 어려웠다. 회의할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음악 전문채널’이란 정체성의 문제로 돌아왔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고 음악계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덕분에 ‘슈퍼스타K’라는 대규모 오디션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도 내부 반대가 크지 않았다. 홍 국장은 “‘슈퍼스타K’는 엠넷이 가야 할 방향성에 가장 부합하는 프로그램이며, 사명을 걸고 만드는 만큼 높은 제작비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됐었다”고 말했다. 예상했던 바대로 광고 현황은 좋지 않다. 이미 방송을 시작한 프로그램들의 시청률도 썩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이 음악계와 음악 마니아층에서 꾸준히 회자하고, 정당성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엠넷은 일단 ‘절반의 성공’이라는 내부 평가를 내렸다. 음악시장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와 엠넷만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희망은 시청률이나 광고수입과는 바꿀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김윤희 기자
“기회 된다면 성인가요 프로도 신설”
홍수현 엠넷미디어 제작국장
-슈퍼스타K는?
이미 수년 전부터 얘기가 나왔고, 3~4년 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왕 시작하는 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제대로된 오디션을 기획하고자 했다.
-엠넷미디어는?
키워드는 세 가지다. ’20대’ ‘음악’ ‘글로벌’. 20대라는 건 20대만 잡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10대가 부러워하는 20대, 30~40대가 그리워하는 20대다. 그래서 타깃을 10대부터 40대, 50대로 넓혀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엠넷은 원래 태생이 음악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음악보단 리얼리티로 흘렀단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은 앞으로 엠넷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아이디어?
1달에 1번씩 각 PD들은 기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기획안들이 정말 기발하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엔 전체 워크숍을 떠난다. 서로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도 하고, 의견 교환도 한다.
-엠넷 역할론?
엠넷은 음악전문 채널로 출발했다. 방송으로서 시청자가 음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엠넷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계획?
국악 클래식 성인가요 등 아직 엠넷에서 다루지 못한 음악 장르가 많다. 우선 기회가 된다면 꼭 트로트가 아니라, 7080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성인가요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싶다.
-10년 후 엠넷은?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당시 교수님께서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전 국민이 모두 함께 즐길 만한 축제가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말씀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1년 중 단 하루라도 모두 거리로 나와 축제를 즐기는 그날, 그 중심에 엠넷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동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