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 박찬호 양복 절단 사건

승리투수가 된 날 갈갈이 찢긴 양복…

<사진:nate.com>

1996 6 19. LA다저스가 시카고에서 원정경기를 치른 그날 나는 LA집에서 라디오중계를 듣고 있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수였지만 언제 등판할 지 모르는 불펜요원이었기에 다저스의 원정경기까지 비싼 출장비를 들여가며 쫓아다닐 형편은 아니었다. 한국의 스포츠서울 초판 마감은 지난 시각이어서 행여 박찬호가 구원투수로 등판하게 되면 지방판 마감에 송고할 준비를 하던 참이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고, 12회쯤인가 박찬호가 마운드에 올랐다. 심드렁하게 스코어북을 기록하다가 몸을 바짝 세우고 중계방송에 귀를 쫑긋 세워 집중해야 했다. 동점 상황에서 시카고 컵스 타선을 처리한 박찬호는 13회초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까지 들어섰다.

투수진이 바닥나 그 게임은 박찬호로 마무리짓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박찬호는 타석에서 4구를 골라내 밀어내기 결승점을 끌어냈다. 그리고 컵스의 마지막 공격을 틀어막았다. 구원승에 승리타점까지 기록한 것이다.

경기 기사를 서둘러 송고하고 박찬호의 에이전트 스티브 김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정 마지막 경기를 치른 날이라 다저스 선수단이 LA로 돌아오는 비행기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공항에 나가 박찬호로부터 구원승 상황과 결과에 대한 소감 등을 인터뷰하고 싶었던 것이다.

 

LA 공항에는 스티브 김도 나와 있었다.

게임 끝나고 찬호와 통화해봤어요?”

, 뭐 간단하게…”

평소에도 말을 길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날 따라 스티브 김이 뭔가를 감추듯 우물쭈물거렸다. 구원승에 승리타점까지 올린 날인데도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황기자, 찬호 나오면 여기서 인터뷰하지 말고 어디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그거야 불감청 고소원. 잠시 뒤 다저스 선수들이 하나둘 빠져 나오면서 박찬호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역시 그의 얼굴표정 또한 승리투수의 그것이 전혀 아니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다.

셋은 LA코리아타운의 식당 한곳 구석자리에 앉아 다소 늦은 저녁식사를 시켰다. 두부제육김치 등을 주문하자마자 박찬호가 입을 열었다. 그로부터 나온 얘기들은 미처 적을 새가 없이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새겨둬야 했다.

지방판 마감 시간을 의식하면서 서둘러 자리를 떠나 집으로 달려갔다. 다음날 스포츠서울 1면에는 이른바박찬호 양복 절단 사건이 대서특필된다. 경쟁지의 특파원들은 없었으니 특종을 낚은 셈이었다.

 

박찬호가 컵스전 구원승을 거두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왔을 때 그의 새 양복이 양팔이 잘려나가는 등 처참하게 찢어져 있던 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동료들의 축하를 기대했던 박찬호로서는 눈이 뒤집힐 수 밖에. 박찬호는 당시 상황을 그의 자서전박찬호 나의 꿈 나의 도전에서 이렇게 되살려놓고 있다.

“…기자들과 신나게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양복이 망가졌다는 말을 했다. 돌아다보니 내가 아끼던 양복이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 반소매로 변해 있었다. 순간 주체할 수 없게 화가 났다. 양복도 양복이지만 지난 2년여간 나를 깔보고 무시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 일시에 폭발하고 말았다. 평소에 다른 선수들이 조크를 해도 그냥 웃어 넘기고, 가만히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 사람들이 나를 깔보고, 한국을 깔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이러던 차에 누군가가 고의로 나를 조롱하려고 내 양복을 잘랐다고 잘못 생각해서 더 이상 얕잡아 보는 놈들에 대해 참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분통을 터트린 것이다. 특히 1 3백 달러나 주고 한 양복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 화가 치솟았다….”

이 해프닝은 그후 박찬호와 다저스 선수들, 특히 중남미계 선수들의 사이를 서먹서먹하게 만들었지만 나아가 메이저리그내 외국인선수들이 미국의 스포츠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됐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일부 동료들의 변호도 있었지만 박찬호가 다저스의 클럽하우스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는 캐릭터를 가진 선수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었던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박찬호는 한동안 이를 씻어내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14년이나 지난 에피소드를 새삼 끄집어 낸 것은 며칠전 엉뚱한 곳에서 박찬호의 양복사건이 들춰졌기 때문이다. 텍사스주의 유력 일간지 댈라스 모닝뉴스의 스포츠기자 게리 프레일리는 지난 7 26일자에서데즈 브라이언트는 카우보이스의 박찬호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프레일리는 프로풋볼 NFL 댈라스 카우보이스의 루키 와이드 리시버 데즈 브라이언트가 훈련캠프에서 동료선수들의 어깨보호대(패드)를 운반하라는 베테랑 와이드 리시버 로이 윌리엄스의 말을 거부했다는 얘기를 전하고 있다.

어깨보호대를 나르는 일은 신인들에게 시키는 일종의 신고식같은 전통인데 이것을 무시한 브라이언트는박찬호의 댈라스 카우보이 버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박찬호가 시카고 리글리필드 클럽하우스에서 우스꽝스런 옷차림으로 비행기를 타는 메이저리그팀들의루키트립(Rookie Trip)’ 전통에 반발하는 바람에 일부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됐고, 선수경력 내내 클럽하우스내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선수가 됐다는 설명을 길게 덧붙였다.

프레일리 기자의 박찬호에 관한 글은 어쩐지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이 잔뜩 담겨 있다. 그것은 아마도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수천만달러의 몸값에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떠났다는 사실에 근거한 프랜차이즈 담당 기자의 불만이 은연중 실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해도 박찬호가 그 양복사건 이후 다저스 동료들과 화합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또 그에 따른 결실이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 더 나은 상황이었음은 철저하게 무시한 프레일리 기자의 칼럼은 지적받아 마땅하다.

박찬호는 다저스 시절 포수 마이크 피아자가외국인 선수들 때문에 팀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말로 팀워크를 해치는 발언을 했을 때 서둘러 피아자를 비롯, 당시 간판타자이던 에릭 캐로스, 일본인 투수 히데오 노모 등을 LA한인타운으로 데리고 가 폭탄주를 주고받으며 화합에 앞장서는 등 양복사건으로 인한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오해를 씻으려 부단하게 애썼던 게 사실이다.

그같은 그의 노력은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등 유명 매체를 통해 다저스 동료들의 증언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박찬호는 자서전에서지금도 양복사건만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그 사건으로 나에게 도움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 지나고 난 지금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좋지않다앞으로도 루키에 대한 그 전통은 이어질 것인데 그럴 때마다 나의 기분은 찜찜할 것이 분명하다…”라며 잊고 싶은 해프닝으로 반추하고 있다. <2010.08.14>

djhwang5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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