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시장에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생겨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주 뉴욕증시의 움직임을 보면 위기 상황이 닥치면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 투자 행태가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주(8.15∼19)에 하락세로 마감했던 뉴욕증시는 지난주 첫 사흘(8.22∼24) 동안 실물 경기의 호조를 반영하는 뚜렷한 호재가 없었지만,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6일(현지시각) 잭슨 홀 연례 미팅에서 부양책을 내 놓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다우존스 지수가 503포인트 올라가는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25일 들어 버냉키 의장이 추가 지원책을 발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다우존스 지수는 171포인트 빠졌고 잭슨 홀 미팅이 열린 26일 버냉키 의장이 9월 하순에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정례 회의 기간을 이틀로 연장하겠다고 밝히자, 다우존스 지수는 134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회의 기간 연장이 추가 부양책에 대한 기대를 높인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지난주의 시장 움직임을 전형적인 모럴 해저드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29일 시장이 위기에 빠지면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투자자들이 위험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관계자들도 모럴 해저드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투자 관리 회사인 T. 로우 프라이스의 앤드 브룩스는 “단기 투자자들이 버냉키 의장의 잭슨홀 연설로 단기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종목으로 옮겨 가고 있다”고 전했다.
아메리칸 센추리 인베스트먼트의 리처드 바이스는 경기 침체를 막는 게 연준의 임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정적인 경제 성장으로 혜택을 받는 성장주에 계속해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럴 해저드가 팽배해질 조짐을 보이자 연준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연준이 최근 제로 수준의 금리를 최소한 2년간 유지하겠다고 결정할 당시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연준이 증권시장과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불균형적인 정책을 시행해서는 안된다”고 통화 당국의 시장 개입에 따른 모럴 해저드 발생을 우려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도 정부의 시장 개입이 모럴 해저드를 부추길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의 통화 정책에 대해서는 논평을 거부했지만, 대형 금융기관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위기가 닥쳐도 정부가 구제해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를 하나의 예로 언급하면서 “정부 정책이 불가피하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린스펀 자신도 1998년 채권시장 위기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내렸다가 1990년대 후반 주식시장의 거품을 유발했다는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다.
(뉴욕=연합뉴스) 이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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