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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대표는 지난 2월 로이터통신이 선정한 ‘실리콘밸리의 유망한 CEO’ 중 한 명으로 유일하게 꼽힌 한국인이다. 아직 포스트로켓은 정식으로 시장에 진출하기 앞서 개인적으로 고객을 늘려가는 단계지만 그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에는 나이와 관계없이 가능성 있는 인재에게 기회를 주려는 선배 창업자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디엘재단(Thiel Foundation)’과 ’500스타트업(500Startups)’ 등은 창업을 꿈꾸는 ‘떡잎’들에게는 물 한 모금과 같은 존재다.
디엘재단은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의 공동 창립자인 피터 디엘이 지난해 만든 2년짜리 실리콘밸리 체험 코스다. 재단은 창업을 꿈꾸는 14세부터 20세 사이의 미래 기업가들에게 10만달러의 자금을 지원한다. 덕분에 실리콘밸리의 문을 두드리는 청년들의 나이는 점점 내려가는 추세다.
’500스타트업’은 벤처 기업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1만달러에서 25만달러의 초기 자금과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160여명에 이르는 실리콘밸리의 고급 인재들이 멘토로 참여, 지원자들이 성공적인 벤처 기업을 꾸릴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소셜미디어 마케팅 회사 ‘포스트로켓(PostRocket)’의 채종인 대표 역시 500스타트업 덕분에 초기 사업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채 대표는 “디엘재단이나 500스타트업 등 젊은이들의 꿈을 장려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 ‘젊다는 것이 선물(young is a gift)’인 이유”라고 말했다.
채 대표와 같은 젊은이들이 실제 경영에 뛰어들었을 때 어린 나이 탓에 불이익을 겪는 일은 없는지 궁금했다.
채 대표의 간결한 답변이 돌아왔다.
“No(없다)”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나이가 몇 살인지는 중요치 않다. 자신의 비전을 실행하고 회사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우선이다.
“어쩌면 어리기 때문에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나이에 비해 이룬 성과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스컴에서 주목하는 게 아닐까요?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말이죠. 하하”
포스트로켓의 일꾼들은 고객들의 페이스북 페이지 게시물이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워준다. 즉, 페이스북을 이용해 마케팅을 하려는 기업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
특히 최근 페이스북이 기업공개(IPO)에 성공해 기업 가치가 1000억달러(한화 약 112조8000억원)로 뛰면서, 포스트로켓도 투자자들 사이에서 유망한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포스트로켓의 독자적인 분석 시스템은 각 게시물에 접근하는 방문자 수를 평균 30%가량 끌어올렸죠. 페이지 방문자 수는 주당 평균 200%, 즉 두 배까지 높인 셈입니다.” 채 대표의 설명이다.
현재 포스트로켓은 매니쉬 아로라(전 구글 광고 수석 제품 매니저), 톰 켈리(블랙스톤 그룹 전무), 메흐디 매흐수드니아(래프터 CEO) 등 17곳의 투자자로부터 50만달러(약 5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13세 소년? 난 사업가다!”= 채 대표는 9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정착할 당시를 떠올리면 힘들었다는 표현밖에 생각나는 말이 없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Yes(예)’ ‘No(아니요)’, ‘Maybe(아마도)’ 세 마디밖에 없었죠. 미국에서 처음 한 두 달은 영어의 구어체 표현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다행히 채 대표는 제2언어로의 영어(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과 개인 과외 등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여섯 달 뒤에는 영어를 비교적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또 운동을 좋아해 또래 친구들과도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당시 채 대표는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직접 캐릭터 카드를 판매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13세 나이에 처음으로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한다. 당시 의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부모에게 지원금 300달러를 받아 티셔츠를 판매했다.
이 어린 사업가는 고등학교 12학년 무렵 받았던 장학금 1500달러도 과감히 사업에 투자했다. 또래 고등학생들을 겨냥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렸고, 종잣돈을 8개월 만에 5만달러로 부풀리는 작은 성과를 이뤄냈다.
“창의적인 마케팅부터 재무관리, 시장의 요구를 파악하는 일, 인재를 고용하고 관리하는 일,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었죠. 무엇보다도 경영전문대학원(MBA)에서 전공서적을 보고 세미나를 하면서 2년에 걸쳐 배우는 것을 단 10개월 만에 습득했다는 것이 의미 있었죠.”
▶“대학 그만둔 것? 후회 없다!”= “왜 대학을 그만뒀냐고요? 제게 필요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마크 저커버그도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도 모두 대학 졸업장이 없잖아요.”
채 대표는 미국 유명 경영대학인 밥슨대학교(Babson College) 재학 중, 2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떠났다. 그도 무난히 대학 졸업장을 받고 ‘남들처럼’ 살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내가 왜 그래야 되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채 대표가 삶에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일은 회사를 운영하는 것뿐이었다. 별자리와 영문학을 공부하고, 세계 역사를 배우는 일은 회사를 꾸리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학 졸업을 포기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냐고 묻자, 그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저는 제 평생의 남은 시간을 창업에 쏟아붓기로 결심했죠. 거기에 학위는 필요없습니다. 성공에는 경험이나 인맥 등이 더 중요하죠. 제대로 사업을 하기 위해 졸업까지 2년이라는 시간을 더 낭비할 수 없었죠.” 과감히 캠퍼스를 떠난 채 대표는 샌프란시스코로 와 지난해 2월 첫 회사인 ‘리딤r(현 포스트로켓)’의 문을 열었다.
여기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채 대표의 나이가 어려 아파트를 임대할 때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결국 아버지가 새크라멘토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141㎞를 달려와 서명을 하고 나서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회사 경영? 롤러코스터 타는 것!”= 스무 살 청년이 사업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까. 그러나 사업 경력이 무려 7년이다. 이제 겨우 나이 20살에. 그는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하늘로 솟아오르다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일을 수시로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미래와 회사의 앞날에 대해 낙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제는 웬만큼 나쁜 상황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동요하지 않는 편이죠.”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른스러운 대답이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끈기와 치밀한 주의력을 좋아하고 마크 저커버그의 열정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 감탄한다. 또 우주여행을 현실로 만든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의 놀라운 발상에도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이런 창의적인 인재를 찾아보기 어려울까. 채 대표는 “실리콘밸리가 왜 실리콘밸리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사고 방식의 문제”라로 진단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혁신을 최대 가치로 생각하고 잠재성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기꺼이 기회를 줍니다. 나이나 학벌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죠”라고 강조했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