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글사랑모임 김동찬 시인 “심심하면 글을 쓰고 시를 쓰세요”

김동찬시인
오렌지카운티 글사랑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동찬 시인. “시는 누구나 쓸 수 있고,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가 내린 초가을 아침, 시인을 만나기 위해 나섰다. 웬지 일상을 벗어난 기분, 시인과는 뭔가 ‘시적’인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모두 쓸데없는 상상이었다.

“딴세상 얘기 하지 말자. 먹고 살기 힘든 세상 아닌가(웃음)”

시인이 바라보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궁금하다. 오렌지카운티 풀러튼에 살고 있는 시인 김동찬씨는 수필가요, 여행가이며, 사업가이다. 그를 만났다. ”배가 고픈데 시는 무슨 시냐”고 스스럼 없이 말하지만 사실 그는 미주 한인 문인들 가운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흥행작가’이다.

그의 수필집 ‘LA에서 온 편지-심심한 당신에게(고요아침, 2002)’과 시조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김동찬(태학사, 2003)’, 시집 ‘봄날의 텃발’(고요아침. 2004)’ 은 미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이 한국에서 출간한 저서들로 꽤 짭짤한 판매기록을 세웠다.

김 작가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생활의 발견’이다. 이민자로서, 비주류로서, 생활인으로서의 시선과 느낌이 작품 곳곳에 배여있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처절하고 슬프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듯 아프면서도 자꾸 눈이 가고 사랑스럽다.

정일근 시인은 그의 시를 두고 ‘마늘의 시학’이라고 평했다.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아메리카에서 모국어를 가지고 시를 쓰는 일은 마늘, 그것도 생마늘을 먹는 일과 다름없다는 것이다.그리고 마늘냄새를 푹푹 풍기고 있다고 했다.

1985년 이민와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해가며 철처한 생활인으로 살았다. 주류시장에 널리 알린 청바지 브랜드 ‘솔로(SOLO)’를 만들어 내며 사업가로서 성공도 거뒀다. 또한 실패도 맛보았다. 당시 이야기들은 그의 수필집 ‘LA에서 온 편지-심심한 당신에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다 1993년 미주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입상하고 이후 1999년 <열린시조> 시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문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어느 유명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를 심심해서 라고 했다더라. 나는 누군가 심심하다고 하면 우리 삶이 본래 지니고 있는 외로움과 안쓰러움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저린다. 할아버지 심심할까봐 놀러왔다는 손자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하시던 생전의 아버지를 잊지 못한다. 외로운 할아버지에게 ‘심심할까봐 왔다’는 손자의 표현은 최고의 서술이자 최고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김 작가의 글을 쓰는 이유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위로를 주는 말을 글로 남기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또한 이것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수필가가 될 수 있는 이유라고 말한다.

“시는 특별한 사람들이 쓰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계층들이 읽는 글이 아니다. 아리랑이니 강강수월래니 모두가 그 옛날 서민들이 곤한 삶과 슬픔을 달래며 흥얼거리던 노랫말들 아닌가. 그게 다 시인 것이다. 노래방 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김 작가는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에 위치한 ‘오렌지글사랑’에서 ‘알고보면 쉬운 시쓰기’와 ‘수필교실’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그저 진솔한 글을 통해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와서 수강할 수 있다. 한번쯤 시나 수필을 써보고 싶고 머릿속으로는 수십편을 써봤는데 첫 한 줄을 꺼내놓기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환영이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은 바꿔 말하면 위로와 소통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말이다. 먹고 살기 힘들면 관계는 나빠지고 소통이 어려워지고 개인은 고립되며 외로워 진다. 이럴때 필요한 게 위로다. 말로 하면 어렵지만 글로 하면 오히려 쉽다. 효과도 더 좋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감동을 주는 글…. 어렵나? 그럼 이건 어떤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그게 바로 시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 어딘가에 나의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 그 사람에게 한번쯤 시인이 되어주자. 계절도 좋은 초가을 아닌가.

하혜연 기자

민들레 9 김동찬

미국으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밤일 다닐 때

아파트 계단에서 늦도록 기다리시던 어머니

집도 사고 좀 안정되었을 때

술 처먹고 늦게 들어오면 늘 문열어주시던 아버지

오늘도 현관 문 앞에 가만히  내려와 계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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