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속 끊임없는 김광석 불러내기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요즘 대중문화 속에서 김광석은 갈수록 살아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뜬 지 1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더욱 절실히 불리고 있다. KBS 월화극 ‘총리와 나’에서 연예기자로 나오는 윤아가 국무총리 역할을 맡은 이범수에게 “무슨 노래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이범수는 “김광석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히든싱어 2’에서는 김광석과 모창능력자들이 대결을 벌였다. 방송 최초로 살아 있는 가수가 아닌 고인과 모창능력자들의 대결은 첨단 기술로 복원돼 애틋함과 김장감을 더했다.

우리의 대중문화에서 김광석을 본격 호출한 것은 2000년 영화 ‘공공경비구역 JSA’에서다. 북한군 중사로 나온 송강호는 남한군 이병헌에게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다니? 야, 광석이를 위해서 우리 딱 한 잔만 하자”고 말하면서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OST ‘이등병의 편지’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불리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군대 가는 사람을 위한 노래로는 윤상이 작곡하고 김민우가 부른 ‘입영열차 안에서’(1990년)가 더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등병의 편지’가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라고 말하는 이 노래는 굳이 군인이 아니어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는 젊은이들의 의지와 열망이 담겨 보다 폭넓게 소비되고 있다.

김현성이 작곡한 ‘이등병의 편지’는 원래 김광석의 노래가 아니었다. 1990년 5월 발매된 공모 앨범인 ‘겨레의 노래’ 수록곡으로 전인권이 불렀다. 김광석이 이 노래를 93년 5월 리메이크 음반 ‘다시 부르기’ 1집에 실어 부름으로써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노래는 발매 당시 ‘너무 우울하고 염세적’이라는 이유로 한때 금지곡이 됐다. 권위주의의 마지막 시대에 머리를 빡빡 깎고 훈련소로 가는 젊은이의 애환이 담긴 이 노래가 궁상을 떠는 노래로 들렸는지도 모른다.


김광석은 차분하며 성찰조다. 솔직한 고백이다. 이런 분위기는 앞만 보고 달리는 ‘성장의 시대’보다는 옆과 뒤를 둘러봐야 하는 ‘분배의 시대’에 더 잘 어울린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비어가는 내 가슴속엔/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로 시작되는 ‘서른 즈음에’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하는 곡이다. 인생의 공허함과 무상함을 느끼면서도, 조금씩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소통이 안 돼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특히 위안이 될 만한 노래다.

김광석의 노래 중 밝은 느낌이 나는 유일한 노래는 자신이 직접 작사ㆍ작곡한 ‘일어나’다. 차분하고 관조하는 그의 노래들과는 다르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거야/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의 후렴구가 인상적인 이 노래는 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들려주면 좋을 노래다.

그가 ‘일어나’를 공연장에서 소개하며 관객에게 이런 말을 했다.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나와서 실망하지 않았나요. 한동안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을 때에 그만 살까 이런 생각도 했는데. 어차피 살아가는 것이 재미거리를 찾고 살아봐야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그 노래를 부르고 2년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가사를 보면 힘이 드는데 다시 일어나자고 자기최면을 거는 듯하다. 대책 없이 낙관적인 노래에 비해 ‘일어나’는 진중함이 느껴지는 밝은 노래다. 한동헌 작곡의 ‘나의 노래’는 서태지와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크게 히트한 93년에 발표되고도 지금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한동준이 작곡하고 91년 2집에 실린 ‘사랑했지만’은 김광석의 인기를 시작하게 해준 곡이다. 지금은 김광석을 대표하는 발라드곡이 됐다.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의 그리움과 외로움이 잘 표현됐다. 또 92년 3집 수록곡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김광석의 고독한 이미지가 그대로 그려져 있다. 자신이 직접 작사ㆍ작곡한, 가장 김광석다운 노래다.

사람들이 김광석의 관조의 경지를 좋아하는 것은 대중의 마음속을 관통해주는 깊은 정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멋 부리는 노래, 멋있는 춤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진정성이 김광석의 음악 속에는 있다. 그는 TV 출연보다는 소극장 공연을 좋아했고, 기자들과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았다. 친구인 박학기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내성적인 성격임을 알 수 있다.

갈수록 음악의 생명력이 점점 더 짧아진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음악과는 달리 김광석의 음악은 치장이라곤 없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차분해지고 애잔해진다. 하지만 따뜻함도 느껴진다. 그 점이 김광석이 긴 생명력을 지닌 이유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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