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관찰예능이라는 양날의 검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SBS ‘짝’의 방송 녹화 현장에서 출연자가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났다. 자살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지만, 6박7일간의 합숙을 하며 보내다 최종선택을 바로 몇시간 앞두고 사고가 터졌다는 사실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출연자가 친구에게 보낸 휴대폰 카카오톡 내용만으로도 이번 사고가 프로그램과 연관성이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어졌다. 이 문자메시지에는 “출연자들도 내가 제일 타격 클 거 같다고” “카메라는 날 잡고 진짜 짜증 났어”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다만, 녹화과정에서 제작자나 출연자들과 불협화음이 있었는지를 더 조사해야 이번 사건이 개인적인 문제가 중요한 원인인지,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때문인지를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자는 지금까지 ‘짝‘에 출연했던 몇몇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봤다. 몇가지 공통된 답변이 나왔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짝’ 제작진의 필요 이상의 개입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가 이성에게 선택받지 못할까봐, 또 관계와 소통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비쳐질까봐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했다.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한 게 아니다.

왜냐하면 방송은 갈수록 날 것, 솔직한 것, 리얼한 것이라는 미명하에 안보여줘도 될 것까지 카메라를 갖다대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안녕하세요‘와 ‘화성인 바이러스’도 출연자의 고민과 특성들이 인터넷과 결합하면 언제건 문제가 커질 소지를 안고 있다. 짝짓기 예능도 마찬가지다. 점점 더 극적이고, 자극적이며, 뒷이야기까지 방송에 내보낸다.

1995년에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MBC ‘사랑의 스튜디오’의 인기는 출연자 모두의 선택이 표시되는 ‘사랑의 작대기’에서 나왔다. 그 이전에는 짝이 이뤄진 결과만 발표했지, 맺어지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과감한 시도인 ‘사랑의 작대기‘로 인해 드러난 어긋난 청춘남녀들의 처절함은 큰 인기요인이었다. 가령, 다섯 명의 남자가 모두 한 여자를 선택하기도 했다. 아무 이성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결과가 공개되자 표정관리를 해야했다.

이런 결과들을 보여준다는 건 어떤 출연자에게는 민망함과 안쓰러움이 동반된 것이었지만 조금 더 내밀한 것을 알고싶어하는 대중의 욕구와 결합해 큰 문제는 없이 순항했다. 이 아이디어는 지금은 드라마 작가로 명성이 높은 김영현 작가의 머리에서 나왔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짝짓기 프로그램은 이 정도 수준에서 만족할 줄 모른다. ‘짝’은 남녀가 서로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게 되는 과정과 그 엇갈림의 충돌을 디테일하게 다 보여준다. 질투를 느끼는 출연자가 있다면, 그건 스토리텔링하기에 좋은 재료가 돼 자막으로 분위기를 더 강화한다.

만약, 이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별 문제 없이 방송됐을 5일 밤에는 여자 1호를 좋아했던 남자 2호가 막상 그녀가 남자 5호에게 관심을 보이자 질투를 느끼며 경쟁을 펼치는 삼각관계구도가 최고의 시청포인트가 되었을 거다. 여기에는 이런 과정이 노출됐을 때 드러나는 지극히 사적인 모습등도 고스란히 방송된다. 이런 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로 작용하는지는 당사자마다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짝‘은 젊은 남녀가 함께 생활하다 보면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이 나오고 남녀의 미묘한 기류까지 포착될 때가 있어 세태를 보기에 좋은 프로그램이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와 정서, 분위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조차도 ‘짝’을 보면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법과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하고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까지 방송으로 보여주고, ‘관찰예능‘이라는 이름이 이런 상황들을 정당화해주는 용어가 된다면, 이번의 불행한 사고가 재발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서병기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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