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흥행 이면에서 벌어지는 논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명량’의 흥행 속도 만큼이나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논란과 고질적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 더 나아가 현실의 리더십 위기에 대한 문제 등 관련 공방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명량’, 범작(凡作) 혹은 수작(秀作)?=사실 영화의 ‘재미’라는 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다. 영화가 ‘재미있다’ 혹은 ‘없다’는 평가를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완성도 높은 영화와 그렇지 못한 영화를 가리는 것은 가능하다.
‘명량’이 신드롬 수준으로 흥행하면서, 일각에서는 비평이 불가능하게 성역화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의 흠결을 지적하면, 이순신 장군과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모독하는 것과 같은 오해가 벌어지는 것이다.
사실 ‘명량’은 장점도 크지만 단점도 뚜렷한 영화다. 무려 61분 간의 해상 전투신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화적 성과이다. 반면 왜군 장수 구루지마(류승룡 분)를 비롯, 주변 인물들의 존재감은 대체로 미약하다. 임준영(진구 분)과 정씨 여인(이정현 분)의 등장 신, 노젓는 인부의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랑가’라는 대사는 각각 관객의 눈물과 각성을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다만 1000만 영화가 수작이 아니라고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역대 1000만 영화들을 보면 작품성을 두고 이견이 있을 때도 있고, 호평일색일 때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1000만이나 되는 관객들이 시간과 돈을 쓰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관객들의 정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겨냥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영화의 힘이다.
▶고질적 스크린 독과점 문제=스크린 독과점 문제야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명량’의 흥행을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명량’은 개봉 첫날 1159개관에서 출발, 최고 1586개까지 늘었다가 2주차 주말에는 1335개를 기록했다. 지난 9일 개봉 첫 주말을 맞은 ‘해적’(818개관)보다 500개관 이상 많은 수치다.
10일 CGV신촌아트레온에서는 ‘명량’이 전체 9개관 중 5개관(35회차 상영)을 차지했다. 상영시간도 오전 7시40분부터 25시까지 빽빽했다. 반면 ‘명량’보다 하루 늦게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경우 1개관에서 단 3회차 상영 뿐이었다. 그마저도 20시35분, 23시10분, 25시45분으로 야심한 시각에 몰렸다. 일요일 23시 이후 상영이야 구색 맞추기일 뿐, 실질적으로 1회 상영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일각에선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은 근거가 있다고 말한다. 개봉 첫 주 좌석점유율이 80%가 넘을 만큼 영화를 찾는 관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대로라면 맞는 말이다. 다만 영화와 같은 문화산업을 이윤추구의 잣대로만 판단하면, 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일은 구호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상생의 생태계를 이루려면 강자의 배려와 사회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은 지난 3주 간 개봉한 작은영화 등 다른 작품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상반기 한국영화 산업 자체가 침체되면서 CJ 역시 수익에 대한 중압감이 큰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좀 더 멀리 내다보고 문화에 대한 배려와 포용의 자세를 가져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봉 2주차에 접어들면서 ‘명량’의 주말 좌석 점유율도 첫주 81.4%에서 69.3%까지 다소 떨어진 상황이다.(8월 8일 52.4%, 9일 78.9%, 10일 75.8%) 그럼에도 개봉 3주차 평일인 현재 1200곳이 넘는 상영관을 장악, 여전히 국내 총 스크린수(2584개)의 절반 가량을 꿰차고 있는 것은 무리한 면이 있다.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 속 리더십 위기의 문제=지금 광화문에선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유가족들이 근 한 달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일부터 영화인들도 릴레이 단식 농성에 동참했다. 장준환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 ‘명량’이라는 한국영화가 흥행하고 있는데 그 뒤에는 우리가 겪은 비극(세월호 참사)에 대한 감정들도 함께 묻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량’을 본 관객들은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지략을 칭송하고, 그와 같은 리더가 부재한 현실에 한탄한다. 특히 영화는 세월호 참사, 유병언 도주극 등의 사건을 지켜보며 무력감과 절망, 분노를 경험한 민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조정을 걱정하긴 커녕 이순신 장군을 음해해 권력을 지키는 데 몰두한 관료들에게서 책임 회피와 자리보전에 급급한 현실의 권력층을 본다. 극중 자신의 안위를 포기한 채 한데 뭉쳤던 민초들에게서, 비통한 참사의 한 가운데서 살신성인한 소시민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과 참모들이 ‘명량’을 관람해 화제가 됐다. 관련 소식을 접하고 인터넷에는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지만, 이를 관통하는 맥락은 하나였다. 단순히 관람 행위로 그칠 게 아니라, ‘명량’ 흥행 돌풍의 행간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지도층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반성하는 동시에, 진정한 리더십에 대해 통찰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명량’의 흥행 신드롬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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